좋아하는 마음이 최고수치에 멈춰서 정점에 머무는 때가 오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한 단락이 난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던가 수평선처럼 쭉 이어지던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젠 수치로 평점을 매기는 행위 따위는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한계를 넘어선 상태에서 더 높아지고 낮아지고 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챕터가 끝난 사랑은 처음처럼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 하지는 않지만 마음 끝자락은 똑같이 저릿했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조금 견딜만하다든가 참을만하다든가 하는 약간의 마음성장 정도가 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 아주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거기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더 빛나는 태도로 다가왔던 것도 아닌 듯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을 살만한 원동력이 되어 주고는 했다. 아무런 말이 오간 적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감정을 읽어 내려가야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붙잡고 한 발짝씩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시선의 끝에 내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고 자꾸만 고백하고 싶어졌다. 그리워하는 것도 습관이 됐다는 걸 알았을 땐 또다시 울 것만 같았고 위로가 되어 주던 그에게 욕심을 부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감정이 이만큼 깊었었구나를 눈치채고 난 후에 그도 나를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난 후엔 못된 마음이 들었다. 오래오래 만나지 못하면 나를 많이 그리워하지 않을까. 기다리지 않을까. 내가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많이 그리워하면 좋겠다 , 가만히 앉아 머릿속을 식히고 있을 때조차 내 생각을 뜬금없이 하며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별처럼 꿈처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라며 의기양양했던 나의 마음가짐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렸다. 커피를 마시며 문득 그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지만 그가 나를 좋아하지 말란 법이 어딨어? 따져 묻지는 않는다. 그렇게 뱉어내기엔 내가 알아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진 기분이었으므로.
짝사랑이 힘들고 고달팠던 적은 있어도 그만 하자 사라져 버리자 했던 적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바쁘게 오가는 공간에서도 나는 우두커니 앉아서 나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렸고 그를 마주했을 땐 갈무리를 잘하는 유능한 배우처럼 담담히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랑이란 걸 하니 아이러니가 참 많이도 생겼다. 거기에만 있어 주어도 좋겠다 했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달라 욕심을 부리고 휴식이 되어 주겠다 했더니 내가 그를 그리워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를 그리워해 주길 바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습관처럼 될수록 아이러니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움도 습관이 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