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았다. 가령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모든 게 낯선 어딘가로 가버리게 된다면 어떨까.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간다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려 본다면 어떨까. 반대로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다면 어떨까. 실현 가능한 것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엔 꽤 벅찬 힐링이 됐었다.
먼 훗날이 되었든 어쩌면 가까운 미래가 되었든.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그 사람이 아주 먼 곳으로 간다거나 반대로 내가 그렇게 된다거나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감정에도 색깔이란 것이 있어서 처음과 끝은 점점 다른 색깔로 변해 갔다. 처음엔 슬펐다가 간절했다가 화도 났다가 안타까웠다가. 가장 마지막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도 다행. 그래서 다행. 가슴 안에 맴돌면서 감정이 따뜻한 핑크빛으로 변했었다.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때가 있다. 생각하면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고 가볍게만 이해했었다.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말은 그 사람 또한 나를 추억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떨어져 있으나 항상 보는 것과 같이 느낌이 통한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슬픈 상상을 하게 되더라도 못 참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건 참 아름다운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늙지 않고 따뜻한 웃음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아름다울 테니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지만 굳이 이런 상상을 해본 이유는 시간이란 것이 너무 빨리 흘러가다 보니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도 변해 버리면 어떡하나 불안하고 서글퍼진 탓이었다.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은 쉽게 변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깊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