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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의뜰 May 14. 2023

그리움의 결말

모든 것은 여전히 제자리에 잘 있었다.  굉장히 무사히. 그래서 안정감이 느껴졌고 단단한 마음이 자란 것도 맞다. 어떤 날은 이게 뭐지? 꿈인가? 정말 인연이 닿았나? 하는 마음이 들만큼 가까워진 듯한 느낌도 받았다. 물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사이의 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온전히 느낌 만으로 알아차려야 하고 감각을 믿어야 하며 시선의 의미를 간파해야 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사랑이란 게 너무 어렵고 피곤하고 지치는 행위라는 생각만 하게 될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꽃향기처럼 퍼지는 사람을 두고 보면 이런 마음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어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만 가져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그 사람이 오늘은 어떤 종류의 바지를 입었는지 무슨 색깔의 셔츠를 입었으며 신발을 신었는지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내가 편하다. 때로는 아는 사람 정도로만 보는 척, 업무적인 관계의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척, 그래도 차가워지지는 말고. 그 사람의 눈을 보면서 이런 모양이었구나 할 수도 있고 나를 바라볼 땐 이런 눈빛이구나 느껴도 보고. 이제 내가 이런 경지에까지 올랐구나 싶었던 적이 있는데 야트막한 개울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사람들처럼 마음에 여유가 생겼었다. 떠오르는 생각이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지? 하는 것뿐.


그 사람은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당황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용기 내어 여담이란 걸 풀어놓아도 담담하고 넘치지 않게 받아주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뱉어 놓고도 검열을 하게 되는 말들을 종종 하게 될 때가 있어도 그는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유능하게 답을 들려주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나? 할 정도로 너무 말을 잘 이어나가서 오히려 나를 당황시킨 적도 있었다. 그와 만날 때마다  내게 하는 인사와 표정은 늘 한결 같았기에 의외로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이제 나와 이 정도까지 마음을 열어 둔 사이가 되었구나 하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만족을 하기로 했냐면 아니. 나는 그를 점점 더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에도 근육이 붙었는지 더 그리워한다고 해도 내 일상이 편안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이뤄지지 않은 사랑 중 좋아할수록 절망적인 사랑만 알다가 좋아할수록 자존감이 높아지는 사랑을 하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부지런히 궁금해했었는데 그를 통해 나는 매일 성장하는 사랑을 하는 기분이었다.


 결말이란 누군가 정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 비로움 같은 것이않을까.  아무도 모르는 결말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볼 수 있을 때까지 보고 가슴에 담을 때까지 담아보는 것이 그리움의 대한 결말을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움의 결말은, 여전히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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