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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뜰 May 28. 2023

어떤 날 중에 그런 날

"당신의 평온을 기도할게요." 소설가 매트 헤이그가 말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당신의 하루가 편안하길 빌어요. 나는 문장의 마지막에 대부분 이런 비슷한 말들로 끝맺음을 하곤 했다. 이런 인사로 마무리 짓는 진짜 이유를 나는 얼마 전 눈치챘다. 진심으로 상대가 평안하기를, 하루의 시작과 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맞지만 그 말을 더욱 진심이 되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나를 위한다는 이유에 있었다.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지만 곧 나에게 내가 되돌려주는 응원의 메시지 같은 것이란 걸 난 불쑥 알게 되었던 거다.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건 모두의 바람이 될 것이다. 그가 행복하면 나 역시 그럴 것만 같은 거울효과를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에만 들어가면 위화감 같은 건 전혀 없이 아주 익숙해서 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가 나에게 베푸는 친절을  잘 알고 있고 내가 그에게 베푸는 친절을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감정은 통한다는 말은 사실이고 감정을 쏟을 땐 별수 없이 기운이라는 게 흘러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곤 하니까. 삶이란 게, 사는 일이라는 게, 사회적인 위치와 벌어들이는 수입과,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와 상관없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를 그늘막도 없이 계속 걸어가는 일처럼 힘겨운 과정이라는 걸 잘 알게 되고  난 후부터 상대가 아무리 잘 나간다 소리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신도 살기 힘들잖아." 측은지심 동병상련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무려 짝사랑이라는 전제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을 깊이 가지게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니까.


내가 힘들었던 날, 하루가 막막해서 한 발짝도 뗄 수가 없던 날. 가장 힘이 됐던 건 장황한 말들이 아니었다. 따뜻한 웃음이었고 친절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던 것이었고 네가 힘든 것을 잘 알고 있노라 알아주던 배려였다. 가장 힘이 되지 않고 그래서 더 기운이 빠지게 했던 최악의 말은 힘내 라거나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근거 없는 위로 같은 것들이어서 나는 함부로 긍정의 말을 남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쳐가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잘 지내셨느냐. 수고가 많으시다. 만약 주말이 다가오는 오늘 같은 평일이면 아주 가볍지만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강하게 주말 잘 보내시라. 이런 말로 그 사람의 일과를 위로하고는 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야 차고 넘치지만 말이란 게 그랬다.  서로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건네야 하는 어려운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위로를 하면 그는 한결같이 감사하다며 잔잔하게 웃고는 했다. 딱 그만큼이 내가 받을 수 있는 마음의 답장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 하는 소소한 인사와 위로는 곧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를, 오늘도 내일도 좋아할 내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 수고하는 나를 내가 위로한다. 당신과 보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시간이 평안하고 여유롭길 바란다. 때론 서글프지만 사랑을 하면 원래 서러운 거였다. 둘이 하든 혼자 하든 서럽고 외로운 감정이 들 때는 분명히 있다. 오히려 둘이 하는 사랑이 그럴 땐 마음이 더 비참해지곤 하지. 나의 마음이 당신 마음이고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다. 하는 앞선 마음은 별로 없고 다만 불꽃 튀는 하루의 일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었으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은, 그의 탈출구가 내가 되고 있다는 자기 확신적 믿음이 전부였다.


사랑이란 게 그랬다. 멀어졌다 좁혀졌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불쑥 가까워지게 되면 전보다 더욱 깊어지는 마음이 되는 것. 그를 위한 위로가 곧 나를 위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소소한 바람이 마음속에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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