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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뜰 May 17. 2023

당신의 그림자가 되어 보고 싶다

 아주 깜깜한 밤 사방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빚이 라고는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이 전부가 되는 그런 날.  아마도 우주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그런 날. 정말 그런 날이 있을까 싶을 만큼 어두운 밤. 가끔씩 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빛이 없는 그림자는 있을 수가 없지만 불가능한 걸 상상해 볼 수 있을 만큼 마음엔 여전히 동심이란 게 살아 있는 듯한 그런 밤에 말이다.  그 사람을  떠올려 보면 늘 안정된 표정과  차분히 친절한 자세  전신을 무장한 모습이었다. 문득,  어둠이 내려앉아 고요한 어느 밤, 비밀리에 드러나는 그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다가 보니 그의 그림자가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상상력이 뻗쳤다. 그의 이면에 있을 슬픔을 마주하고 싶었고 말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있다면 괜찮으니 말해보라 권유하고 싶었다. 사람 사는 것, 별로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어느 위치에 서 있든 그것이 낮든 높든 낮으면 낮아서 힘들고 높으면 높아서 ,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한다고 말이다. 대화 마지막에 주말 건강의 보내시라는 나의 인사에 그러게요. 주말을 잘 보내야 할 텐데 라며 그는 말을 줄였다.  만날 때마다 그에게서 느낄 수 있던 삶의 피로감이 주말을 기점으로  조금씩 더 쌓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있어줄 듯 말을 하곤 했다. 업무상일 뿐일 텐데도 그의 말들은 대부분 나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는 했다. 다음 주엔 계속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네, 다음 주 있어요. 있으니까. 이렇게 말을 줄여주면 짝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마음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곱씹다 보면 결국엔 그의 희로애락에 동참하는 일과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땐 위로를 해주는 감정적 소통밖에 없음을 알게 되지만 그 또한 뭔가의 계기로 짝사랑의 틀을 벗어나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더욱 그의 그림자가 되어서 그의 마음을 살피고 싶었다.


 내가 그의 슬픔을 안다고 하여 그의 슬픔이 사라질 리 없고 그의 좌절을 안다고 하여 쉽게 일어설 수 있을지도 만무하지만 그의 이면을 살펴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볼 수 있다면 그를 향한 내 사랑이 좀 더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그의 마음에 내가 자라고 있는지 그래서  굳혀졌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야 한결같지만 시간에 비례하듯 사랑이 점점 더 성장해 간다는 건  한결같던 마음을 잠깐 비켜가 다른 통로로 걸어가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의 등장은 내 삶에서 굉장히 드라마틱한 출현이었다. 다시는 내 인생에서 이런 등장을 할 사람이 없을 것이란 확신. 그런 사람에게 나는,  나날이 더,  잘, 해주고 싶었다.  어둠을 함께하는 그림자 같아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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