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내가 겪어 온 불안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지만! 나의 비밀스러운 속내를 까발리고 싶어진 시절이 오기까지 거의 4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생각하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으로서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작한다는 게 어디야? 북돋워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직장에서의 페르소나를 벗고 온전한 나로 돌아온 미혼의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타인과 함께여도 좋았고 혼자 놀아도 또 그게 너무 재밌고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내 힐링이었다. 사람들은 혼자서 무슨 재미로 노냐고, 이런 내가 신기하다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난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느라 일상이 바빴다. 당시 초등 미술 강사를 하고 있었던 나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비교적 출근시간이 여유로웠고 퇴근 후의 시간도 충분히 여유로워 스트레스는 그나마 덜했다. 주말이면 대학 도서관에 가서 글을 썼고 평일 이른 아침엔 시내 극장에를 가 조조영화를 봤다.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바닐라라테를 마시기도 했고 서점에서 갓 나온 신간들과 옛 도서들도 마음껏 읽었다.
약속이 있는 날! 혼자 맛봤던 나만의 시간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생각보다는 되려 그런 여유를 부려본 적이 없다는 사람처럼 무리에 푹 녹아 달콤한 만남을 가졌다. 혼자여도 시간이 잘 가고 둘셋이어도 나의 시간은 너무도 잘 흘러가 시간이여 영원하라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서른 살이 넘으면서 미혼이면 누구나 한다는 불변의 고민들을 나 역시 피하지는 못했다. 돈을 좀 모아놔야겠지. 이제 슬슬 결혼이란 것도 고민해 봐야겠지? 근데 어디서 어떻게? 나이를 먹음과 동시에 차마 마주 보고 싶지 않아 피하고만 싶었던 현실과 맞닥 뜨렸을 땐 땅으로도 꺼지고 싶었고 하늘로 솟구치고도 싶었다. 나의 상황이란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스스로 압박받아 자꾸만 밀려나게 만드는 도의적 책임 같은 것들로 인한 무거운 짐이었다.
안정감 있는 나의 일상이 좋았고 이제 내 몸처럼 딱 맞아떨어져서 핏감도 괜찮은 직장도 좋았다. 당연히 매일이 꽃밭일 수는 없는 노릇. 나 혼자만 안고 가도 충분한 만큼의 고뇌와 슬픔이었을지언정 그 존재는 변하지 않고 거기 그대로 있었지만 굳이 누군가와 공유해 나누고 싶을 만큼 무겁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이 정도 상처쯤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거잖아. 오히려 잘 버텨내고 이겨내 준 나를 장하다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 무지로 인한 엄청난 착각일 뿐이었고 그래서 파생된 불안과 우울이 나를 얼마나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상처라고 명명되는 말속에는 불안과 우울과 화와 분노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똑바로 마주 보지 않으면 자꾸만 떠밀려와 아프게 한다는 것도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