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무어라 말하겠냐고. 내가 좀 더 어리고 세상이란 게 뭔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몰랐던 시절엔 이런 질문을 받아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젠 이런 질문이 그리 어렵지도 않고 철학적이지도 않다. 나의 답은 아주 분명해졌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식어야말로 인생을 참 잘 표현해 놓은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굉장히 편협했던 20대에는 나 하나만 건사하기에도 벅찼던 것은 물론 오롯이 나 하나만 행복을 추구하면서 잘 살면 됐다. 내 앞 가름만 잘하면 대다수의 일들은 괜찮은 종류의 것들이었고 연결고리는 심플했다. 나이를 먹어서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고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느 집 안의 맏며느리가 된 후로 나를 둘러싼 세상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결정하든 나 혼자만의 생각이어서는 안 됐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실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낭만을 운운하기보다는 육아가 먼저였고 하루 시간 중에 낭만을 불러낼 수 있는 틈은 한두 시간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코 뜰 새 없고 정신이 쏙 빠져나가는와중에도 이것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변화이자 내 인생의 좋은, 아주 귀한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내 성격상 서른 후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뜨내기처럼 살고 있었다면 난 정말 절실히 우울해져서 매일매일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른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이고 잃은 게 귀한 것일수록 얻는 것 또한 너무나 귀하디 귀하여 값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거다.
낭만을 부분적으로 잃었고 나만의 도깨비는 나날이 환상 속의 그대처럼 변해가고 나의 이름은 이제 내 아이의 엄마로 불리겠지만 이 속에서 충실하게 아름다운 날을 찾는 건 분명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