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은 늘 짧았다. 뛰어가면 건널 수 있을 것 같아서 뛰어봐도, 두어 발짝을 앞둔 채 빨간색으로 변했다.
약간 억울하기도 하고 그냥 뛰어가 버릴까 고민도 한다. 하지만 결국 정 시간, 초록불을 다시 기다리는 게 나였다.
높게 설정된 도덕적 행위에 대한 대가 이기도 했고, 무엇인가에 대한 눈치보기인 것도 맞았다. 타인들은 무심하다. 불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아랑곳 않고 도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양심이라든지 눈치보기라든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 타인을 볼 때마다 나는 늘 두 가지 마음이 생겼다. 왜, 나처럼 신호를 지키려들지 않지? 또 하나는 왜 난, 저들처럼 자유롭게 건너지 못하는 거지?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가? 하는 스스로의 대한 불만 섞인 생각이었다. 한 번은 친한 언니와 일상적인 얘길 하면서 신호등에 관한 에피소드를 말했던 적이 있다. 언니는 나에게 너무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더 당당하게 초록불 될 때까지 기다렸다 가는데? 그 사람들 보란 듯이!"
나는 아마도 웃었던 것 같다. 그래, 사람 사는 방식이나 가치관엔 정답이란 게 없다지만 이왕이면 저렇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편이 훨-씬 좋잖아, 난 왜 그러질 못하지? 옳은 선택을 해도 탓을 하고, 삐딱해도 더 탓을 하고... 쓸데없이 피곤하게 사는군.
작은 것에도 의미 부여하기 잘하는 나라서 보고 느끼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생각도 많다는 소리가 되니 사는 게 피곤하긴 했다. 한결같이 두 가지 마음이 있으니 단순하지도 못하지만 뭘 하든 스스로 칭찬하기보단 질책이 많았던 탓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스스로를 너무나 옭아매는 습관을 고쳤으면 하는 것이고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나는 나에게 경고를 하듯 명령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유순하게 봐줄 여유를 가져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낀다.
부디, 묶어둔 동아줄을 하나씩 하나씩 끊어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