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뜨겁다
나는 더 이상 불꽃은 아니지만, 여전히 뜨겁다 문득 거울을 보다가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예전처럼 번쩍번쩍 빛나지는 않지만, 대신 깊고 고요한 빛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불꽃은 아니지만, 여전히 뜨겁다.
젊은 날, 나는 불꽃이었다 20대의 나는 완전한 불꽃이었다. 한 번에 활활 타오르며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였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 때면 밤을 새워가며 몰입했고, 열정이 넘쳐 주변 사람들까지 덩달아 뜨거워졌다. 그때는 강렬함이 전부였다. 조용히 하는 건 재미없었고, 뜨겁게 하는 건 뭐든 좋았다. 사랑도 격렬했고, 화도 격렬했다. 웃을 때는 온 세상이 들릴 정도로 웃었고, 울 때는 온 세상이 무너질 듯 울었다.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잠은 사치였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는 그런 생활이 즐거웠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그 강렬함이 곧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불꽃은 아름답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불꽃은 아름다운 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도 어느 순간 식어버렸다. 번아웃이 왔고, 몸이 망가졌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한 프로젝트들이 늘어났다. 첫 주에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다가, 한 달 후에는 완전히 손을 놓아버리는 일들이 반복됐다. 사람들은 나를 '3분 열정'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불꽃같은 사랑을 하지만, 그 열정이 식으면 급격히 식어버렸다. 상대방도, 나도 그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불꽃같은 사랑은 로맨틱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제는 조용한 불빛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변했다. 더 이상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오래가는 불빛 같은 사람이 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지속가능하다. 일을
할 때도 예전처럼 며칠 밤을 새우지 않는다. 대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나간다. 급하게 결과를 내려고 하지 않고, 천천히 완성도를 높여간다. 그 결과 예전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급격히 친해지지는 않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오래간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화려한 만남보다는 의미 있는 만남을 추구한다.
다른 종류의 뜨거움 사람들은 내가 예전보다 차분해졌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열정을 잃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단지 그 뜨거움의 종류가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의 뜨거움이 순간적이고 폭발적이었다면, 지금의 뜨거움은 지속적이고 깊이 있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숯불처럼 오래도록 따뜻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지만, 속에서는 꾸준히 열정이 이글거리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예전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대신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진행해 나간다. 그 결과 예전보다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깊어진 사랑의 방식 사랑하는 방식도 변했다. 예전처럼 격렬하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더 깊이 사랑한다. 상대방의 작은 습관까지 사랑하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불꽃같은 사랑은 드라마틱하지만, 불빛 같은 사랑은 따뜻하다. 매일 아침 커피를 타주고, 피곤한 하루를 마친 상대방을 안아주는 것. 그런 일상 속의 사랑이 더 값지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님께 대하는 마음도 변했다. 예전에는 반항하거나 무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꾸준한 것인지 안다.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조용한 영향력 나는 이제 조용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처럼 큰 소리로 주장하지 않지만,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화려한 연설보다는 진심 어린 대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후배들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다. 나는 예전처럼 "해봐! 다 될 거야!"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차분히 들어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그들은 내 말을 신뢰하고, 실제로 도움을 받는다.
지속가능한 열정 가장 큰 변화는 지속가능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열정이 있다가 없다가 했지만, 이제는 꾸준히 유지한다. 큰 파도처럼 밀려오지는 않지만, 잔잔한 강물처럼 계속 흘러간다. 운동도 그렇다. 예전에는 갑자기 헬스장을 끊어놓고 한 달 동안 매일 가다가, 그다음 달에는 아예 안 가곤 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일 년 내내 꾸준히 간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밤새워 책을 읽다가 며칠 동안 책을 멀리하곤 했다. 지금은 매일 30분씩, 꾸준히 읽는다. 그 결과 일 년에 읽는 책의 양이 오히려 늘어났다.
나는 여전히 뜨겁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열정을 잃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열정을 잃은 것이 아니라, 열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불꽃에서 불빛으로, 폭발에서 지속으로.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단지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젊은 친구들이 나를 보며 "형은 이제 안정적이네요"라고 말할 때, 나는 웃으며 답한다. "안정적인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거야." 불꽃도 아름답지만, 불빛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지금의 내가 젊은 시절의 나보다 더 나은 건 아니다. 그때의 불꽃같은 열정도 필요했고, 지금의 불빛 같은 꾸준함도 필요하다. 모든 시기에는 그 시기만의 의미가 있다. 젊은 시절의 불꽃이 없었다면 지금의 불빛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뜨거운 열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나는 더 이상 불꽃은 아니지만, 여전히 뜨겁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강도로, 하지만 여전히 뜨겁다. 그리고 이 뜨거움이 더 오래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불꽃에서 불빛으로. 이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용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꺼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꺼지지 않는 불빛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