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의 아침
새벽 다섯 시, 실상사 범종이 산골을 깨운다. 나는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창문을 열면 지리산이 품을 벌리고 서 있다. 천왕봉은 오늘도 구름 한 조각을 머리에 이고 있고, 나는 그 아래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차를 끓인다. 64년을 살아온 몸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혼자라는 것이 외롭지 않다. 오히려 처음으로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
젊은 시절엔 성공이라는 허상을 쫓았다. 중년엔 가족을 위한다며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지금, 64세가 되어서야 묻는다.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살기 위해 살았다. 숨쉬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이 순간을 맞기 위해.
실상사 마당의 고양이가 가르쳐준다. 목적을 묻지 말라고. 그저 살면 된다고. 햇살이 좋으면 그 속에서 잠들고,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비를 듣고.
혼자 사는 것은 기술이다.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하는 기술, 침묵과 적막을 나누는 기술,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
아침마다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정성이 들어간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64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위해 차를 끓인다.
산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발걸음에 재촉이 없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그저 걷는다. 산이 이끄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지리산 자락에서는 계절이 온몸으로 다가온다. 봄이면 산 전체가 연초록 물감을 뿌린 듯하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집까지 스며든다. 가을의 단풍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울 설경은 마음까지 하얗게 만든다.
혼자 지내지만 외롭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이 가장 좋은 친구니까. 말을 걸지 않아도, 대답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친구.
실상사 동네 사람들은 참 따뜻하다.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하루를 밝게 만든다. 장 보러 나가는 길에 만나는 할머니, "오늘은 춥네요" 하며 건네는 미소.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그저 서로 무탈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이 진짜 이웃이구나, 싶다.
64세의 오후, 실상사 앞에 앉아 생각한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거창한 목표는 필요 없다. 매일 아침 산새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계절마다 바뀌는 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웃과 나누는 소박한 인사, 그리고 나 자신과의 깊은 대화.
이제야 안다. 삶의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64년을 살아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인생에는 때가 있다는 것.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든 답을 알 필요도 없다는 것.
지리산이 수천 년을 그 자리에 서 있듯, 나도 내 자리에서 내 속도로 살면 된다. 혼자라는 것이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로움이고, 나이 든다는 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
희미했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선명해진다. 살아온 이유도, 살아갈 이유도 결국 같은 곳에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실상사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64세의 나는 오늘도 조용히 살아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생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