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만지며
예순을 넘겼다.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육십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깊어진 주름, 성긴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눈빛. 이 모든 것이 말하고 있다. 정말 오래 살았다고, 많은 것을 겪었다고.
그런데 이제야, 이제야 묻는다. 나는 나에게 무얼 하고 살아왔을까.
예순이 넘어서야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참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미운 마음이 먼저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왜 젊었을 때는 몰랐을까. 그 많은 시간을 어디에 썼을까.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던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다니며,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애쓰며, 내 마음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살아왔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내 몸을 혹사시켰고, "나중에 여유 생기면"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미뤄왔다. "지금은 가족을 위해"라며 나 자신은 뒷전으로 밀어두었다.
그 시간들이 아깝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원망스럽다.
특히 마흔을 넘기고, 오십을 넘기면서도 여전히 남의 평가에 좌우되고, 여전히 나 자신을 다그치고, 여전히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 그 시간들이.
예순이 되어서야 "아, 이렇게 살면 안 되는구나"를 깨달은 내가 미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된다.
적어도 깨달았으니까. 늦었어도 알게 되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모르고 간다고 하지 않나. 죽을 때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모르고,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모르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그런데 나는 예순이 넘어서라도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내가 나를 얼마나 소홀히 해왔는지,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예순이 넘은 지금, 나는 드디어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
이제야 내 마음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낼 때 "아, 정말 아프구나"라고 인정해준다. 이제야 내 몸이 피곤하다고 할 때 "그래, 쉬어야지"라고 말해준다.
이제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칠십의 누군가가 더 건강해 보이든, 오십의 누군가가 더 부유해 보이든,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이고 나는 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안다.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이 들어서 뭘 하겠다고"라는 소리에 주눅 들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다.
늦었지만, 시작했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아직 이십 년 정도는 더 살 것 같다.
이십 년. 그 시간이 적지 않다. 그동안 나는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먼저 사과하고 싶다.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이제부터는 잘해줄게."
그리고 약속하고 싶다. 남은 시간만큼은 나를 사랑하며 살겠다고. 내 마음을 존중하고, 내 몸을 아끼고,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예순이 넘어서야 시작하는 자기사랑이지만, 그래도 시작하는 게 어디인가.
가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나처럼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나처럼 남의 시선에 휘둘리고, 나처럼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며 사는 모습들을 보면.
말해주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너 자신을 사랑해.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네 마음을 들어봐.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
하지만 젊었을 때의 나처럼, 아마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늦어도 깨닫는 게 어디인가.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본다.
예순이 넘은 이 얼굴이, 이 몸이, 이 마음이 이제는 사랑스럽다. 완벽하지 않아도, 젊지 않아도, 그동안 많이 혹사당했어도, 그래도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준 소중한 나의 일부들이다.
이제야 알았다는 게 늦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은 정말 나답게,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살아가겠다.
예순이 넘어서야 시작하는 진짜 인생이지만, 그래도 시작이다.
오늘 밤, 예순이 넘은 나는 나에게 말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하자. 남은 시간은 정말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거울 속의 나는 주름진 얼굴로 환하게 웃어준다. 마치 "그래, 이제야 제대로 된 얘기를 하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