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메밀꽃의 하루하루

4편 여름 소나기 속의 기억

by 루담

장맛비가 연이어 내리던 7월 초, 그날도 새벽부터 비가 퍼붓고 있었다.

“씨부럴, 뭔 놈이 비가 이리 온다냐?” 주방에서 일하시던 우리 주인아줌마의 18번이 다시 울려 퍼졌다. 이 말이 들리면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거다.

식당 앞마당은 축축이 젖었고, 식당 안엔 점심 장사를 위한 준비로 분주한 손길이 오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선 첫 손님은 등산복에 온몸이 젖은 낯선 이들이었다.

“혹시 따뜻한 국물 있나요?”

말보다 먼저 전해진 건 그들의 젖은 눈썹과 추위에 떨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아줌마가 특유의 입담으로 '씨부럴, 뭔 놈이 비를 이렇게 맞고 왔담!'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망설임 없이 따뜻한 온메밀소바를 준비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에 정성을 가득 담았다. 그들은 말없이 국을 들이켰고, 국물 한 숟가락에 얼굴이 풀렸다.

우리는 젖은 등산화를 잠시 놓아둘 수 있도록 입구 쪽에 마른 수건을 깔아주고, 따뜻한 실내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젖은 옷을 잠시 말릴 수 있도록 행주와 작은 선풍기를 건네주었다. 그날 그들에게 식당은 식사 공간이 아니라 잠시 쉴 수 있는 피난처였다.

비가 그친 뒤, 그들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짧은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우린 그들의 이름도,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그날의 고요한 마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람은 기억보다 따뜻함을 오래 간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리산메밀꽃의 하루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