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야 비로소 알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앉는다.
창가 끝, 오래된 나무 의자.
살짝 기운 다리 때문에 앉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난다.
그래도 좋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 왠지 마음까지 기대어지는 기분이라서.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든다.
비 맞은 얼굴처럼 선명해지는 이름들,
말끝에 맴돌던 문장들,
괜히 마음에 닿는 순간들.
손에 쥔 따뜻한 커피잔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그 따스함이 손끝을 타고 마음까지 퍼진다.
비는 조용히 말을 건다.
"조금 멈춰 있어도 괜찮아.
그렇게 흘러가도 괜찮아."
언젠가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비는 하늘이 기억을 꺼내는 방식이다.”
그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에 젖는다.
쓸쓸한 듯 따뜻한 이 감정이
참,
비 오는 날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