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어깨 하나 같이 견디는 거.
“비 오는 날 같이 걸을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시절엔 참 대단한 일이었지.”
그날도 비가 왔다.
기억이 선명하다.
우산은 하나였고,
그 사람은 일부러 안 썼다.
“같이 쓰자”고 내가 말도 못 꺼내게,
먼저 우산 아래로 들어왔다.
내 쪽 어깨는 흠뻑 젖었고,
그 사람은 자꾸 내 쪽으로 기울었지.
말은 별로 없었는데
그날 나는
고백이 아니라 확신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걷던 길,
논두렁 옆, 버스 정류장,
학교 앞 떡볶이집.
다 젖었는데도,
그날은 참 따뜻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딘가에서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비가 오면,
그 어깨, 그 눈빛,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겠던 그날의 공기가.
사랑이란 게 꼭 뜨거울 필요는 없더라.
젖은 어깨 하나 같이 견디는 거.
그게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