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버릴 수가 없더라
그냥 버릴 수가 없더라.”
비가 오면
괜히 쓸데없는 걸 정리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안방 옷장을 열었다.
미루고 미뤘던 그 묵은 옷들.
세탁소 비닐에 싸인 셔츠,
단추 하나 떨어진 조끼,
낡아빠진 면치마.
몇 해 전부터 안 입었는데도
버리지 못했다.
왜냐고?
냄새 때문이지.
그 사람 냄새.
마당에서 일하다 들어올 때,
된장 냄새 배인 앞치마.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느낌.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구겨진 버스 영수증 한 장.
아이고야…
이게 아직 있네.
그날은
내가 속이 상해서 말도 안 섞고
그 사람은 뒷짐 진 채 말없이
이 셔츠를 입고 나갔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날은
우산을 안 쓰고 왔었다.
빗속에 젖은 사람을
내가 말없이 수건으로 닦아준 기억이 난다.
그게
어쩌면 마지막으로 가까웠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옷은
못 버린다.
그 사람은 갔지만
이 냄새와
이 감정은
아직 여기에 있으니까.
묵은 옷은,
옷보다 오래 남은 기억을 안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걸 접었다 폈다,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