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리산메밀꽃의 하루

8편 하얀 것들은, 없지만 있다

by 루담


가게 앞에는
메밀꽃이 없다.

지리산 자락만 없다.
진한 흙냄새,
바람 따라 우는 나뭇잎 소리.
메밀꽃밭 같은 풍경은 없지만
이곳엔,
하얀 마음들이 있다.

도시에서 내려온 손님은 묻는다.
“여기가… 메밀꽃 핀 그 식당인가요?”

“씨부럴, 여기가 그곳인디요.”

처음엔 민망했다.
이름값 못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름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풍경을 만든다는 걸.

노부부가 함께 온 날엔
조용한 웃음이 피어난다.
혼자 밥 먹는 젊은이 앞에선
따뜻한 국 한 그릇이 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지리산 메밀꽃’.
그건 그냥 간판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마음의 풍경이다.

하얀 꽃은 없지만,
이곳엔
하얀 마음이 흐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 오는 날에도 꽃은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