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하얀 것들은, 없지만 있다
가게 앞에는
메밀꽃이 없다.
지리산 자락만 없다.
진한 흙냄새,
바람 따라 우는 나뭇잎 소리.
메밀꽃밭 같은 풍경은 없지만
이곳엔,
하얀 마음들이 있다.
도시에서 내려온 손님은 묻는다.
“여기가… 메밀꽃 핀 그 식당인가요?”
“씨부럴, 여기가 그곳인디요.”
처음엔 민망했다.
이름값 못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름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풍경을 만든다는 걸.
노부부가 함께 온 날엔
조용한 웃음이 피어난다.
혼자 밥 먹는 젊은이 앞에선
따뜻한 국 한 그릇이 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지리산 메밀꽃’.
그건 그냥 간판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마음의 풍경이다.
하얀 꽃은 없지만,
이곳엔
하얀 마음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