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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메밀꽃의 하루하루

11편 – 롤케이크 한 상자

by 루담

그날은 유난히 햇빛이 맑았다.

바람도 고요했고,

식당 안에 이상하게 부드러운 공기가 돌았다.

늦은 점심시간,

8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머님 한 분과

50대 후반 아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걸음이 느렸고,

약간은 불편해 보이는 다리를

작게 끌며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셨다.

“여기 혹시… 돈가스 되지요?”

사장님은 얼른 앞치마를 매며 반갑게 대답했다.

“그러면요! 되지요~

천천히 앉으세요. 물은 내가 따라줄게 예.”

조심스레 자리에 앉은 어르신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여셨다.

“넘어져서 병원에 좀 있었거든요.

퇴원하고 나니까...

이상하게 돈가스가 먹고 싶더라고요.”

그 말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말없이

따끈한 미소 된장국과 작은 샐러드 한 접시,

계란찜을 곁들여 돈가스를 내어주었다.

“많이 못 드셔도 괜찮아요.

바삭하게 튀겼으니까 꼭 한 입 드셔보세요.”

그날 식당은 조용했다.

창밖 햇빛만 식탁 위에 길게 깔리고,

어르신은 아주 천천히 식사를 마치셨다.

다음날.

어제와 같은 시간.

다시 그 어르신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여전히 옆에

약간 굳은 표정의 50대 남자가 함께 있었다.

큰 체격,

묵직한 걸음,

표정은 썩 밝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아들은

메뉴판도 보지 않고 말했다.

“돈가스, 두 개요.”

사장님은 슬며시 웃으며

전날과 똑같은 자리에 그들을 앉혔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르신이 살며시 다가와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포장된 롤케이크 한 상자.

“어제 너무 고마워서요.

오늘 다시 왔어요.”

사장님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쇼핑백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한마디.

“아이고, 또 이런 걸 주고 그라노.

씨부럴, 내가 뭐 대단한 거 했다고.”

그러면서도

그 롤케이크는

조심스럽게 냉장고 위칸에 넣어두셨다.

그날 돈가스를 먹고 간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나섰고,

사장님은

쇼핑백에 붙어 있던 손글씨를 나에게 보여주셨다.

> “밥보다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그 종이를

메뉴판 뒤에 조용히 끼워두었다.

이 식당의 온기는

가끔은 그렇게

케이크 한 상자처럼

달콤하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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