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걔네 선진국 맞아?

오늘 우리와 600년전 그들

by 초로의 궁사

19화에서 등장한 한확이 조선 조정에서 나름의 예우를 받았던 것은, 단지 그가 영락제의 처남이었기 때문이나 스스로 위세를 과시하지 않는 처신 덕분만은 아니었다. 조선이 그와 그의 집안을 각별히 대했던 데에는, 그의 누이이자 훗날 강혜장숙여비(康惠莊淑麗妃)라는 시호를 받게 되는 한씨의 비극적인 운명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 사회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여비 한씨는 타국의 궁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순간, 한확과 그 집안은 하루아침에 ‘황제의 친족’이 아니라 비극의 유가족이 되었다.

(유모 김흑이 돌아와 아뢰기를)
“성조(영락제)가 승하하였을 때 궁인으로 순장된 자가 30여 명이었는데, 여비 한씨와 최씨도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죽을 때에 모두 마루 위에 서게 하고, 작은 평상을 놓아 그 위에 서게 한 다음, 머리 위에 올가미를 걸어 평상을 치우니 모두 매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여비가 죽기 전 새 황제(홍희제)에게 빌기를, ‘우리 어머니는 늙으셨으니 바라건대 제 유모 김흑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하니,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장차 죽으려 하며 유모에게 말하기를, ‘어머니, 나는 갑니다. 어머니, 나는 갑니다.’ 하고 흐느껴 울다 마침내 죽었습니다.”
— 『세종실록』 권26, 세종 6년 10월 17일​

실제 여비의 유모 김흑은 사건 직후 곧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한동안 명나라에 억류된다. 이 순장 사건이 중화와 다름없는 조선에 알려질 경우, ‘인의 나라’라는 명나라의 체면이 손상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명나라 내부에서도 이 사건을 떳떳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 조정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인(仁)을 근본으로 하는 유교를 국시로 삼는 중화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외교 관계를 고려해 공식 항의는 삼가고, 대신 여비의 넋을 기리며 그 어머니에게 식량과 노비를 하사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이후 조선은 중국의 공녀 요구에 대해 훨씬 더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한확이라는 ‘유가족’을 전면에 내세워 방어에 나섰고, 공녀 차출을 피하기 위해 민간에서 확산되던 조혼 풍속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조선 정부의 속내는, 이조판서 허조의 발언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 중국의 예법이 옛 제도와 합치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장례만 보더라도 ‘허수아비로라도 순장하면 후손이 끊어진다’는 말은 어린아이도 아는 바인데, 지금 태종 황제의 장사에 궁녀 15인을 순장하고 풍악을 울려 시체를 즐겁게 했다 하니, 이와 같은 일은 비록 중국의 일이라 하더라도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 『세종실록』 권30, 세종 7년 10월 9일​




저 멀리 태평양 건너에서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강변하던 강대국의 이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마주하며 “저 나라, 정말 선진국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문득, 600년 전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조선의 조정과 선비들이 왜 그토록 침묵 속에서 분노했는지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늘 놀란 얼굴로 다시 처음인 것처럼 그 장면을 마주할 뿐이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차-LG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기술자 317명을 포함한 475명을 불법 취업 혐의로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기술자들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비위생적인 시설에 일주일 넘게 구금한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 내 반미 여론이 고조되었다. 구금됐던 기술자 중 약 200여 명은 인종차별, 불법 체포, 과도한 물리력 행사 등을 이유로 미 당국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한확#순장#트럼프# 영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