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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an 28. 2019

가장 처절한, 가장 우아한 복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여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소녀를 그녀의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이자 친구에게 보내 미술 수업을 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이 화가는 그림을 가르친다는 명목 하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10대의 어린 제자를 수 년간 성폭행합니다. 심지어 이 화가는 유부남이었죠. 
바람둥이 화가는 이 순진한 소녀에게 달콤한 말로 결혼을 약속하며 못된 짓을 계속 했지만, 당연히 그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소녀는 스스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 17세의 나이에 법정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가 성실한 유부남을 먼저 유혹했을 거라며 비난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처녀성 검사와 손가락을 비트는 여러 번의 고문을 받는 등 갖은 수모를 겪게 됩니다. 당시에는 지속적인 고문을 당하여도 일정한 대답이 나오면 그것을 진실로 인정했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부인을 살해하려 했던 계획과 처제를 성폭행했던 혐의까지 밝혀지게 되면서 화가는 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하지만 고작 1년에 미치지 못하는 형이었고 10개월의 긴 재판 기간 동안 이미 그녀의 마음과 삶은 갈기갈기 찢겨버린 후였습니다. 

이후로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큰 고통에 무너져 정신을 놓아버렸을까요?
혹은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손가락질했던 세상을 원망하며 은둔했을까요?
그렇게 사랑했던 미술 때문에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만두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미치지도 않았고,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세상에 지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했던 미술 또한 만두지 않았죠.

그녀는 그 이후로도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면서 투쟁했고, 또한 수많은 명작들을 그려내는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고, 결국 말년에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당당히 왕실 화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누구보다도 당당한 여장부이자 뛰어난 화가로 살아갔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입니다.

여기 그녀가 그렸던 작품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생생한 살인의 현장입니다. 거대한 칼로 건장한 남자의 목에 칼을 찔러 넣고 있는 사람은 여성입니다. 



칼이 목에 이미 어느 정도 들어갔기 때문에, 베어진 목에서 솟구쳐 오르는 피로 흰 침대보가 물들고 있습니다. 솟구친 핏방울은 목을 베고 있는 여성의 드레스와 가슴팍에도 튀겨나갑니다. 
남자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저지하려 손을 뻗어 붙잡아 보려 하지만, 이미 죽음은 가까이 온 듯 보입니다. 




남자의 눈은 반쯤 풀려 있고, 마지막 숨을 끊어놓기 위해 두 여자는 온 힘을 다해 남자의 몸을 붙들고 칼을 끝까지 찔러 넣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을 벌이고 있는 여자의 표정은 전사처럼 결의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 있습니다. 저는 몇 년전에 이 작품을 실제로 보았는데요. 이 작품에 대해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작품을 실제로 본 순간 그 생생함과 잔인함에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작품의 제목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입니다. 구약성서 외전에 등장하는 여성인 '유디트'는 아주 용감한 여성이자 민족을 구한 영웅입니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 베투리아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 쳐들어왔을때 아름다운 과부였던 유디트는 군대를 막을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바로 적진으로 변장을 하고 들어가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술시중을 들은 뒤 그가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목을 베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유디트는 용감하게 이를 시행에 옮겼고 베어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시녀와 함께 유유히 적진을 빠져 나왔습니다. 
다음날 적진 앞에 걸려있던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잘린 머리를 본 적군들은 기겁을 하며 모든 전의를 잃어버렸고, 장수를 잃은 군대는 그대로 퇴각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유디트'는 자신의 나라를 구한 성경 속의 흔치 않은 여성 영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강한 여성상,혹은 팜므 파탈의 주제가 되었죠.

그리고 위의 작품은 여자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겪어야만 했던 젠틸레스키가 그린 영웅, '유디트'인 것입니다. 
 
혹시 지금쯤 젠틸레스키가 왜 이 작품을 그렸는지 이유가 짐작이 되시나요? 젠틸레스키의 삶에 일어났던 사건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죠? 맞아요. 이 작품은 바로 젠틸레스키가 그림을 통해 한 처절한 복수입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유디트의 얼굴은 바로 젠틸레스키 본인의 얼굴입니다. 목이 잘려나가고 있는 홀로페르네스의 장군의 얼굴에는 그녀를 성폭행했던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의 얼굴이 그대로 그려져 있구요. 
뻔뻔하고 파렴치했던, 그래서 그녀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남성을 그녀는 성경 속의 이야기를 빌어 작품을 통해 단죄한 것입니다. 
 
이 여성이 젠틸레스키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성의 얼굴이 그녀의 초상화와 똑 닮았음은 물론이고 화가 본인이 직접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림 속의 유디트가 차고 있는 팔찌를 자세히 한번 볼까요?



그림을 크게 확대해보면 팔찌에 새겨진 것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르테미스, 즉 달과 사냥 그리고 순결의 여신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의 '아르테미시아'의 어원인 아르테미스를 팔찌에 새겨 넣음으로써 그녀는 유디트가 곧 자신임을 확실히 한 것이죠. 
그리고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에 깊게 찔러넣은 칼은 의도적으로 십자가와 똑같은 모양으로 그려 넣어서 이것이 단순한 살인이 아닌 신성한 처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젠텔레스키는 '유디트'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실은, 그녀에게 '유디트'를 주제로 작품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요. 당시 그녀가 겪었던 재판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꽤 유명했기 때문에 주문자들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도 그 주제를 굳이 주문한 것은 아마도 그 주제라면 그녀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격한 감정으로 그려낼 것이라 내심 기대했던 것이겠죠.

본인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상기시키는 이 주제는 그녀에게 껄끄러운 주문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주문에 결코 불편해 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당차게 그리고 호기롭게 그 주문들을 받았고, 자신의 경험을 승화시켜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격정적인 '유디트'를 탄생시켰습니다. 
 
1610년, 젠틸레스키는 자신에게 작품을 주문한 한 고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게 됩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그림에서 카이사르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의 인생에 닥쳤던 가장 큰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했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당신도 그녀의 얼굴에서 시저 황제의 용맹함이 보이시나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나의 존재를 통제할 것이다. 
-Artemisia Gentiles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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