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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Feb 10. 2019

섬세한, 너무나 섬세한

명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by 얀 반 아이크



우리 눈 앞에는 빛이 들어오고 있는 어느 방 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방 안에는 한 쌍의 남녀가 서 있습니다. 둘은 엄숙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방의 천장에는 놋쇠 재질로 만들어진 화려한 샹들리에가 걸려있고, 오른 편에는 붉은 색의 침대 장식이 보입니다. 뒷 편 벽에는 거울이 걸려있고 바닥엔 이국적인 깔개가 깔려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볼 때 이 방의 주인은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으로 짐작이 됩니다. 방 안에 서 있는 남녀의 옷차림 또한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럽습니다. 남성의 긴 옷의 마감 부분이나 여성의 소매부분에 덧댄 모피 장식도 아주 화려하죠.



왼편에 서 있는 남자는 오른손을 들어 맹세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다소곳한 자태로 왼 손으로 치마를 끌어 모아 쥐고 있습니다. 유난스럽거나 특이한 모습은 아니지만 방안에 감도는 엄숙한 분위기로 볼 때 무언가 중요한 의식을 진행하는 것 같아 보이는 순간입니다. 지금 이 방 안에서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요? 

힌트는 이 방 안에 있습니다.
사실, 이 방안에는 우리가 보고 있는 부부 이외에 2명의 사람이 더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그 사람들 또한 사실은 이 그림에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방의 뒤쪽, 벽면에 걸려진 오목 거울 안에 그 사람들 모습이 있습니다. 거울을 한번 크게 보도록 할까요?



화가는 우리가 그냥 지나쳐 버릴만한 작은 오목 거울 안에, 방 뒤편에서 보이는 방 안 풍경을 섬세하게 모두 다 그려 넣었습니다. 왼쪽 편에 빛이 들어오는 창문과 창 밖의 풍경과 천장의 샹들리에, 오른편에 있는 침대의 모습, 그리고 서 있는 남녀의 뒷모습들이 이 작은 거울 안에 모두 오밀조밀하게 들어가 있죠. 
심지어는 왼편 창가 앞에 놓인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오렌지 서너개 까지도 다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남녀의 앞에 보이는 장면입니다.



열려진 문 사이로 두 명의 사람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보이세요?
이 두 사람이 이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인 얀 반 아이크이죠. 어떻게 이 사람이 화가인지 알 수 있느냐구요? 화가 본인이 친절하게 직접 그림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거울의 바로 위쪽을 함께 볼게요. 그림 위쪽엔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라는 라틴어가 적혀있는데요. 이 말을 해석하면 바로 "반 아이크 여기 있었노라. 1434"라는 뜻입니다.  화가 스스로가 오목 거울 속 경관과 벽에 있는 싸인을 통해 자신이 이 남녀와 함께 방 안에 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서명은 조금 특이합니다. 가장 흔한 서명의 형태는 본인의 이름만 적는 것이죠. 가끔 등장하는 말도 '누구가 이 작품을 그렸다' 혹은 '누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정도의 문장입니다. "...여기 있었노라."라는 것은 보통은 거의 볼 수 없는 문구이죠. 15세기까지는 화가가 그림에 서명을 한다는 것 또한 흔한 일은 아니었구요. 

그래서 이 서명문을 두고 학자분 들 사이에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해요. '여기 있었노라'라는 말 때문에 이 그림이 이 그림의 화가인 '얀 반 아이크'와 그의 아내의 결혼식이다,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 속의 남자의 신분은 확실합니다. 남자는 '조반니 아르놀피니'라는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하던 부자 상인이라는 여러 증거가 남아있어요.
특히 아래 보시는 것처럼 아르놀피니의 초상화가 남아있는데 큰 코와 눈매가 그림 속의 남자와 똑같죠? 



그렇다면 화가는 거울 속의 남자가 확실합니다. 얀 반 아이크는 초대를 받아 이 집에 왔었고, 그때 이 집에서는 그가 작품을 그려 '내가 여기 있었다'라고 증명할 만 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정답은 바로, 이 두 남녀가 남녀간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결혼의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에는 두 남녀의 '신성한 결합'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모티브들을 두어서 그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화면 위쪽에 걸린 샹들리에를 다시 한번 보도록 할게요. 창문으로 태양빛이 들어오고 있고, 밖은 분명히 낮인데 이 샹들리에 위에는 촛불이 하나가 켜져 있습니다. 하나만 켜진 촛대는 중세 이래로 '혼례의 촛대'라고 불리며 결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른쪽 침대의 뒤쪽으로 놓인 의자 등받이 위 목조 장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두 손을 모은 여성은 바로 성녀 마르가리타의 상인데요. 성녀 마르가리타는 자식을 고대하는 여성의 수호성자입니다. 임신을 축복하는 성녀의 상이 신부의 얼굴 바로 옆에 오도록 그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그리고 두 사람의 발치에서 우리는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 또한 오랫동안 '충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모티브로 이는 결혼에서 중요한 미덕인 '배우자에 대한 신실함'을 상징합니다.

이 외에도 뒤편 거울 옆에는 묵주가 있고, 성녀 마르가리타의 목조상 밑에는 성스러운 향유를 뿌리는 솔이 걸려 있습니다. 결혼이 카톨릭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성스러운 행사임을 감안할 때 이 두 물건 또한  신성한 결혼과 연관이 되어 있죠.

그리고 결혼의 '신성함'을 의미하는 아주 중요하고 깜짝 놀랄만한 상징이 한 가지 더 등장합니다.



처음에 화면 뒤쪽에서 보았던 볼록 거울을 다시 보도록 할게요. 볼록 거울 안에는 이 방안의 풍경이 모두 다 그려져 있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죠. 이번에는 어딜 보셔야 하냐면, 바로 볼록거울을 둘러싼 장식입니다. 아까 전에는 지나쳤던 거울의 바깥 테두리가 원들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보이실 거에요.



놀라운 것은 이 거울을 더 크게 확대하면…! 이 각각의 원 안쪽에 또 그림이 그려진 것이 보이시나요? 정말 깨알같이 작은 원 안에 또 각각 다른 그림들이 그려진 것을 보실 수 있어요. 이 그림의 실제 사이즈는 82cm X 59.5cm로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의 실제 크기는 약 8~9mm 정도가 될 거에요. 



그 작은 원마다 그려 넣은 것은 바로 성서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고 작은 10개의 원 안에 예수의 수난 장면들을 하나씩 그려 넣은 것이죠.  
감란산에서의 기도, 태형,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감, 십자가에 못 박힘, 매장, 부활 등 예수님의 10가지의 수난 장면을 모두 그려 넣었습니다. 지금 확대된 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이 보이시죠?

예수의 수난은 기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이를 통해 인류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곧 원죄에 대한 구원을 드러냅니다. 
또한 예수의 수난은 곧 교회와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해서, 종종 결혼으로 비유되기도 하죠. 그래서 이 가장 중요한 사건을 그림에 끼워 넣음으로써 '신성한 결혼'을 더욱 강조한 부분입니다. 

이 두 사람의 신성한 결합의 의식에 화가는 공증인으로서 참가를 했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서명을 남김으로써 두 사람의 결혼을 증언하는 일종의 증명서를 만들어 준 셈이죠.
( 보통은 결혼식이 방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두 사람의 잡은 손의 모양 등의 점을 들어 이것은 결혼식이 아닌 약혼식이다 라는 설도 있다고 해요.)

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작품은 이렇게 다양한 상징과 더불어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인, 마치 현미경으로 보고 그린듯한 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저는 특히 이 볼록거울의 주변 장식 부분을 확대한 것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놀랐어요. 이 쪼끄만 부분에 이걸 다 그리다니!!! 정말 화가란 아무나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작품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상징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말 섬세한 필치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림에 있는 다양한 상징들을 이해하게 되면 그림이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죠. 

또 기회가 되면 이렇게 다양한 상징을 '읽을 수' 있는 다른 작품들을 소개해드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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