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없던 과거에는 가족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현대의 가족 사진처럼 얼굴에 웃음이 만발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요. 오늘 소개할 작품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벨렐리 가족>이라는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드가’가 자신의 고모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가족들 간의 심리적 긴장감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아버지는 옆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얼굴에는 대부분 그림자가 져 있고 허리를 굽힌 구부정한 모습입니다. 함께 모여서 당당히 정면으로 몸을 향하고 있는 어머니나 딸들에 비해 존재감이 아주 약합니다. 드가는 아버지를 다른 가족과 떨어뜨려 귀퉁이로 밀어내고, 어머니가 화면을 압도하도록 그려냄으로써 가족 안에 존재하는 대립과 힘의 관계를 표현했습니다.
드가의 고모인 라우라와 언론인이었던 고모부 젠나로 벨레리의 결혼은 정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집을 자주 비웠고 자신의 일 외에 가정을 돌보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젠나로에게 아내와 아이들은 정을 붙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두 딸은 어머니와 가깝게 위치함으로써 이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딸들, 그리고 아버지 사이의 거리는 이 가족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를 보여줍니다. 부부의 완전히 엇갈린 시선은 이 부부가 서로 너무나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 결혼이 실패했다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그나마 화면 중심에서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은 침착한 표정의 둘째 딸이 부모님 사이에서 중립의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드가는 고모 라우라 벨릴리의 초대를 받아 1858년 여름 피렌체를 방문했습니다. 드가가 머무는 동안 벨렐리 가족의 불행은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드가는 미화되거나 포장되지 않은 이 가족의 현실 그대로를 냉철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이 저에게는 왜 위로가 되었던 걸까요. 나이를 좀 더 먹으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족들에게는 사진 한 장에 담기 어려운 저마다의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때로 어떤 이야기는 너무나 아프고, 아무리 행복한 가족이라도 작품처럼 서늘한 갈등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