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드릴 예술가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당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던 부르주아 계층의 부와 진취성이 드러난 초상화로 빠른 성공을 거뒀습니다. 젊은 나이에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그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어요. 큰 빚을 내 대저택을 구매하고 사치품으로 집을 꾸몄지요. 수입과 비례해 빚도 늘어갔지만 그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시기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기가 많았지만 언제나 그가 돈을 버는 속도보다 쓰는 속도가 더 빨랐어요. 그리고 뜻밖에 화가로서의 재능과 자부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는 주문 받은 초상화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입히지만, 고객들은 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요. 렘브란트는 이에 맞춰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를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고집스런 화가로 소문나게 만들었고, 이후 작품 의뢰는 대폭 줄어듭니다.
개인의 삶에도 불행이 스며듭니다. 세 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모두 몇 달을 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네 번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출산 후 시름시름 앓다가 몇 달 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던 중 자신의 가정부 헨드리키에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아내의 유산 문제로 그녀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불륜으로 지역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며 얼마 남지 않은 명성마저 모두 잃고 맙니다. 50대가 된 그는 결국 파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들과 헨드리키에 또한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지요.
말년의 그는 가난하고 사랑하는 이를 모두 잃었으며 누구도 찾지 않는 불행한 화가였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며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화가로서 자신의 인생과 예술을 탐구했습니다.
그의 사망한 해에 제작된 <돌아온 탕아>는 신약성서 누가복음서 15장에 나오는 비유를 토대로 한 종교 주제입니다. 유산을 미리 상속받아 아버지 곁을 떠난 작은 아들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돼지치기를 하며 비참하게 지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비난과 호통을 예상하며 두려워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며 큰 연회를 열지요.
작품 속 지친 아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쇠한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다시 잃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아들의 어깨를 붙들고 있어요. 모든 것을 용서받은 아들은 지친 방황의 끝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편안한 숨을 내쉽니다. 아버지의 큰 사랑이 모두의 어깨 위에 황금빛 축복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또한 신에게서 방탕했던 시절의 자신을 용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말년의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풍랑을 견뎌내는 인간 존재의 숭고함을 작품에 표현합니다. 그의 깊은 인간애가 우러난 작품 속 인물들은 그 내면의 품위가 금빛으로 스며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말년의 그가 작품 속에서 붙들었던 빛은, 다름 아닌 ‘인간 영혼의 빛'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저는 그의 시선을 통해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바로 말년의 렘브란트 그 자신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품 :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1663-1669),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