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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Feb 23. 2023

무심히 차별받았던 당신에게

<쉬볼렛> by 도리스 살세도

여행을 가기 위해 캐리어를 꺼내 물건을 담다 보면 늘 깨닫게 된다. 집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짐들 중에서 막상 나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캐리어 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진 그 짐의 무게, 딱 그만큼이 나의 현재 삶의 무게는 아닐까.


나는 공항에서 일하는 동안 질리도록 많은 짐가방들을 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타인의 짐가방 속, 그러니까 아주 사적인 영역을 뒤져보게 되는 진기한 경험도 수없이 많이 했다. 이유는 바로 수하물 무게 제한 때문이었다. 초과된 짐 무게로 인한 추가 요금에 화가 나서 고성을 지르는 승객들과의 실랑이는, 아무리 일을 오래 해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짐 실랑이는 직원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진이 빠지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어떻게든 곧 해결이 되지만, 피곤한 짐실랑이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경우는 보통 외국인 노동자 분들인 경우가 많았다. 먼 타국땅에서 삶을 꾸려나가던 외국인 노동자 분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때에는 기내로 가져가는 짐마저도 잔뜩일때가 많았고, 또 그 분들의 주머니 사정상 비싼 추가요금을 쉬이 지불하기도 어렵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승객과 이대로는 도저히 부쳐줄 수 없다는 직원의 대치가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매일 너무 바쁘게,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어떤 순간에는 내가 상대하고 있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을 종종 잊게 된다. 나 또한 일에 치여 마치 기계처럼 감정을 잊고 일할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짐 실랑이 같은 일은 빠르게 돌아가던 톱니바퀴에 모레가 끼어 멈추듯 아주 성가신 일이 되어버린다.


그날도 그런 많은 날들 중 하나였다. 카운터 앞의 승객은 외국인 노동자 분이었고, 한 눈에 보기에도 터질것 같은 캐리어와 양손에도 짐이 한가득이었고, 아마도 짐무게를 조금만 봐달라고 요청하실 것이 뻔했고, 나는 규칙대로 필요없는 것은 버려야 한다고 말씀드려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감정 없이 말했다.


"지금 짐이 너무 많으세요. 기내도 다 못 가져가실 거에요. 캐리어 열어서 좀만 정리해 빼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그 분이 서툰 한국말로 말씀하셨다. "나,이제 더 한국 안 살아요. 안에 다 내 애기들 선물이에요. 정말 뺄 거 없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아, 뻔한 핑계.


 "죄송해요. 그러기엔 너무 많아요. 가방 한번만 좀 열어보세요. 버릴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진짜 없어요. 제발요. 한번만요." 이런 이야기가 여러 차례를 오가며 점점 진이 빠져가는 걸 느꼈다. "그럼 가방 한번만 열어주세요. 제가 한번 볼게요. " 표정없이 냉정하게 말하며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뺄게 없는 게 어딨어... 열어보지도 않고. 말도 안돼.' 그 분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결국 캐리어 열었다.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쁜 인형 세트였다. 그리고 그 분이 이리저리 짐을 들추자 새우깡 같은 한국 과자 여러봉지, 그리고 이런저런 우리나라의 양념장이나 먹을거리들이 보였다. 그리고 더 뒤적이자 색이 아주 고운, 그리고 그걸 입을 아이들의 나이가 짐작되는 아이들용 한복이 나왔다. 그리고 쏟아지는 예쁜 아이 옷들.


큰 아이는 여자 아이, 작은 아이는 남자아이일 것이다. 이 옷들을 입고 해사하게 웃을 것이고, 그걸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더 눈부신 미소가 어릴 것이다. 그 중에서 내 눈 앞에 있는 아저씨의 짐으로 추정되는 것은, 아주 작은 소품 파우치 하나와 허름한 옷가지 한두벌, 그리고 당장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을 아주 더럽고 낡은, 말그대로 누더기 신발 한 켤레 뿐이었다.


아저씨는 캐리어를 해집어 다 보여주시면서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아가씨 정말 미안해요. 진짜 애들거 밖에 없어요. 나 이 신발 버릴게요. 그니깐 나머지는 한번만 봐주세요. 제발요."


당장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게 더 어울릴 낡은 신발, 하지만 그 분은 그 신발을 버리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 아마도 1-2년은 너끈히 더 신을거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다. 그런 신발을 버릴지언정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만큼은 과자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보낸 얼마간의 삶이 모두 담겨있는 가방 안에서, 뺄 수 있는 것은 정말 단 한개도 없었다.


공항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인생들의 속사정을  내가 감히 다 알 수 없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다보면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 편견이 생길때 가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종종 단순한 가방의 무게로는 절대 짐작조차 불가능한 한 사람의  삶의 무게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선입견의 안경을 벗은 나안으로만 볼 수 있는, 한 인생에 담긴 수많은 아름다운 순간들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최근에 가장 마음에 남는 예술가를 단 한 명 꼽으라면 도리스의 살세도를 꼽고 싶다. 그녀는 콜롬비아 출신의 예술가로, 그녀의 작업은 '정신적 고고학'이라고도  불리운다. 이는 그녀가 일상생활과 밀접한 재료들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설치 작업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 셔츠들 >  출처 :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도리스 살세도의 초기 작품인 <셔츠들>에서는 눈부시게 하얀 셔츠들이 차곡차곡 접혀져 큰 쇠막대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언뜻 보기에는 청결하고 정갈하며 잘 정돈된 질서를 보여주는, 미니멀리즘의 작품인 듯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다룬 것은 바로 콜롬비아 라 네그라와 온두라스의 바나나 농장에서 있었던 대량 학살 사건이다. 입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농장주들에게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농장주는 자신과 결탁한 공권력을 이용해 한밤중에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사살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밤중에 침대 위에서 끌어내려져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그대로 목격했다.


하지만 우리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폭력적인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다. 그녀는 그 폭력의 결과를 우리에게 시적으로 보여준다. 하얗고 가지런한 셔츠안에서 힘차게 뛰고 있었을, 누군가의 총알에 의해 멈춰버린 심장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눈부시도록 하얗지만 우리는 그 가슴이 뚫려버린 셔츠에 흥건했을 피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셔츠들은 삶에 어느 시점인가에 그 셔츠를 입었던 사람들의 '부재'를 우리에게 강하게 상기시킨다.


이렇듯 살세도는 극한의 폭력이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지만 그녀의 작품은 특정 사건이나 개별적인 희상자들을 넘어서 모든 사회와 국가에서 반복되어온 폭력을 보편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차마 마주하기 힘든 폭력을 다루는 그녀의 방법은 굉장히 섬세하고 은유적이기에 그 폭력이 남긴 상처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 나에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아저씨의 짐가방을 떠올리게 했었던 작품은 바로 <쉬볼렛> 이다. 이 작품은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의 터빈홀에 2007년에 설치되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원래 화력발전소가 있었던 곳을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으로 바꾼 곳으로, 이중에서도 터빈홀은 미술관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만날 수 있는 길이 약 152m, 너비 22m, 높이 35m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도리스 살세도는 바로 이 공간에<쉬볼렛>이란 제목의 작품 단 한 개만을 설치했다.


< 쉬볼렛 >


전시장 안은 사실상 텅 비어있다. 그런데 매끄러워야 할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나 있다. 터빈홀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금. 이것이 바로 작품 <쉬볼렛>이다. <쉬볼렛>이라는 단어는 과연 무엇을 뜻는 것일까. <쉬볼렛>은 히브리어로 곡식 이삭 혹은 시냇물의 물줄기를 뜻한다. 구역성서 사사기를 보면 이 단어와 관련한 일화가 등장한다. 영토 분쟁이 한창이던 부족국가 시절 전쟁을 하는 인접 국가들은 같은 언어를 쓰지만 나라마다 그 역양이 미묘하게 달랐을 것이다. 쉬볼렛은 바로 그 미묘한 차이를 색출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었다.


"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강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shibboleth)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sibboleth)이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
<사사기 12장 5~6절>


미묘한 발음의 차이. 그 발음 하나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사람 4만2천명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비슷한 일은 역사상 수없이 반복되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사건당시 일본 자경단원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발음하기 힘든 일본어 발음을 시키고 발음이 서툴면 죽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 또한 아주 작은 차이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 짓는 일들을 무심히 행할 때가 많다.


외국인이 볼 때에는 완전히 똑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조선족 분들이나 교포 분들의 발음을 완벽히 구분해낸다. 절대 메꿀수 없는 경계와 틈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나 항상 존재해왔다. 우리는 항상 그 경계의 어느 편엔가 서 있지만 우리가 그 경계를 처절히 인지할 때는 우리가 배척당하는 쪽에 서게 됐을 때 뿐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어떻게 약자의 편에 속하게 될지, 언제 그 경계의 틈으로 발을 헛디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공항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얼굴들과 가방들을 떠올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특정 인종, 나라, 성별, 나이에 따른 수십, 수백 개의 구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 구획들은 겹겹히 쌓아올려지면서 견고한 벽이 되어갔다.


나는 한때 나 스스로 세운 그 수많은 겹들을 편견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세상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근거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날 마주했던 아저씨의 짐가방, 그 속에 담겼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나의 그런 인식에 큰 균열을 내주었다.

그 분은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라는 꼬리표가 내내 붙어있었을 이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선물할 한복색만큼 고운 추억을 많이 쌓으셨을까. 부디 그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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