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소로야의 작품 세계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누군가 나에게 실제로 항복을 요구한 것은.
정말 다행히도 정말로 대결 같은 상황이 발생해 항복을 요구받았던 것이 아니다. 그 문구는 바로 어린이집의 아가들이 쓴 카드에 쓰여 있었다.
나는 그때 한 유적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유적지 바로 앞에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날이 좋으면 종종 산책을 나오곤 했었다. 병아리 떼 같은 그 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줄을 맞추어 인사를 하며 입장할 때면 직원들은 모두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 웃음이 잔뜩 담긴 눈으로 아이들을 좇기 바빴다.
그렇게 자주 찾아오던 아이들이 새해가 되자 너무 사랑스럽게도 우리 모두에게 새해 인사 카드를 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우리가 산책할 수 있는 이곳을 예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항복하세요.'
이 카드를 모든 직원이 돌려보며 모두가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그저 가끔 들리는 공간인 곳의 어른들에게 기특하게도 새해 인사 카드를 쓰다니. 그리고 항상 항복하라는 의도치 않은 귀여운 협박(?)을 하다니. 아마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 귀여운 오탈자를 발견하셨지만 일부러 이것을 고치지 않으셨을 거다.
아이들은 이런 존재들이다. 굳어있고 빡빡하고 숨 쉴 틈 없는 세상에 온기와 웃음을 불어넣어 주는, 그야말로 현실에 살아있는 천사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도시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뛰거나 큰 소리로 웃거나 울지 모른다. 도시는 그런 아이들을 품어줄 여력이 없다. 모두가 시간에 쫓기고, 설 자리가 없고, 그래서 모두 예민해져 있다. 그런 도시에서는 암묵적으로 아이들이 없는 조용하고 단정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이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다.
아이들은 도시보다 자연에 훨씬 가까운 존재들이다. 예측 불허이지만 그렇기에 자유로운 아름다움이 있는 자연과 아이들은 말 그대로 찰떡궁합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소리처럼 사방에 울려 퍼지는 넓고 여유로운 자연. 그 둘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와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호아킨 소로야이다.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는 1863년 2월 27일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소로야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많이 보이는 주제이자 그가 살아서도 명성을 얻게 했던 주제는 바로 '바다'이다.
바다만큼 많은 예술가들을 끌어당긴 주제도 많이 없지만, 소로야의 바다가 특별한 것은 소로야가 그린 바다에서는 항상 아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니, 마치 아이들이 가장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바다가 배경으로 꼭 필요한 것만 같다.
스페인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답게 그의 작품 속에서 표현한 빛의 바다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한낮의 햇살을 잔뜩 머금어 더 청명한 색의 바다, 그리고 빛나는 아이들의 그을린 피부, 하얀 포슬린 드레스의 색감과 질감은 정말 압도적이다.
하지만 내가 소로야의 작품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은 바로 당장이라도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올듯한 그 생생함이다. 아이들이 새들처럼 지저귀고 있는 그의 작품 속에서의 바다는 아이들을 품어주고, 마음껏 뛰고 구르는 그들의 생명력을 푸르게 지켜주고 있다.
발렌시아의 눈부신 햇살과 바다의 풍경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풍경에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이만큼 소로야의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포착한 아이들은 바다의 품에 안겨 옷을 벗고, 마음껏 내달리고, 또 자기들만의 놀이에 흠뻑 빠져있어서 그가 얼마나 아이들과 그들의 생기를 열렬히 사랑했는지 알 수가 있다.
소로야는 만 2세가 되던 해에 콜라라로 부모를 모두 잃었고, 그래서 외할머니와 삼촌에게서 보살핌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년시절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삼촌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받았던 것인지, 혹은 원래 그렇게 사랑의 불꽃을 마음의 품고 태어난 사람인지 그는 25세가 되는 해에 자신의 평생의 뮤즈가 되어줄 배우자 클로틸데를 만났다.
두 사람은 2년 뒤 마드리드에 정착한 해 사이에 세 명의 아이를 두었다. 소로야는 죽을 때까지 클로틸데와 행복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여행을 할 때면 매일 클로틸데에게 편지를 썼고, 종종 편지 안에는 꽃을 함께 동봉했다고 한다. 그의 편지 중의 한 문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아내를 진심을 다해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내 모든 사랑은 당신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나의 큰 사랑에도 불구하고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많은 이유로 그들에 대한 사랑보다 훨씬 더 큽니다. 당신은 나의 몸이고, 나의 삶이고, 나의 마음이고, 나의 영원토록 가장 이상적인 존재입니다. "
아이들보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편지에 썼지만, 이렇게나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그가 얼마나 사랑했을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 소로야의 눈에 바다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은 생을 바쳐 그려도 아깝지 않은 주제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서야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말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맘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아이들은 층간소음 유발자들이고, 식당에서는 조용한 식사를 방해하는 존재들이며, 그저 미숙하고 번잡스러운, 아직 제대로 다 크지 못한 작은 어른일 뿐이었다.
사실 아이들은 그들이 지닌 그 터질듯한 생명력 자체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이유를 만들어 주는 존재들인데 말이다. 그들의 영롱한 아름다움은 콘크리트 건물들로 둘러싸인 회색 도시에서 계속해서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소로야의 작품을 보면 나는 눈을 감고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꽉 찬 시원한 바다를 마음속으로 떠올린다. 우리 모두가 기억을 잃었지만 한때는 저렇게 존재만으로 빛을 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한다.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뛰노는 세상이 당연한 곳이 되기를 마음 깊이 바라게 된다.
아이들이 없고, 아이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정말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 희망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