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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an 31. 2024

소수빈과 앙리 마티스

"나  요즘, 이 노래 하루에 10번 넘게 듣는 것 같아."


그다지 음악에 큰 취향이 있다 할 수 없는 남편이 말했다. 대체 어떤 노래길래, 출퇴근 시간 내내 같은 노래만 반복해서 듣는다는 걸까.  


호기심에 노래를 틀었다. 첫 소절 한마디를 듣는 순간 찌릿하는 느낌이 왔다. 아, 나도 진작 들을걸. 그리고 결국 나도 며칠째 같은 노래를 하루에 10번씩 반복 청취하게 되어버렸다. 중독적이었다. 

그 노래는 바로 소수빈의 <한 번만 더>, 싱어게인 3 프로그램의 TOP3를 차지한 가수의 최종 결선 곡이었다. 


세상에 좋은 노래는 정말 많다. 특별한 시즌이 되면 꼭 떠오르는 노래도 있고, 들을 때마다 예전의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곡도 있으며, 공연장에서 모든 사람들을 미쳐 날뛰게 하는 노래도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어떤 노래는 신기할 정도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같은 노래를 신물이 나도록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노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연도 들어 나를 중독자로 만든 첫 노래는  소수빈의 <한 번만 더>가 되었다.


세련되게 편곡했지만 30여 년 전에 발매된 수수한 곡, 그리고 소름 끼치는 고음이나 화려한 기교 없는 담백한 목소리.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목소리와 꼭 어울리는 온유한 외모. 첫 무대에서 그는 소년의 목소리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쉬운> 가수입니다."


쉬운 예술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구절이다. 사실 '예술'이라는 단어는 굳이 따지자면 '쉽다'보다는 '어렵다' 쪽에 늘 가까운 느낌이다. 언제나 접근 가능하고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준다기보다는 항상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 같은 단어.


그런데 이 가수는 자기가 쉽다고 말한다. 그는 어려운 것은 자기가 다 할 테니 듣는 분들은 쉽게만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절친인 가수 정은지는 이렇게 말했다. 


 "쉬운 가수, 친절한 가수라고 해서 절대 여태까지 해왔던 그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소수빈은 친절하기 위해서 뒤에서 더 많이 노력하는 가수예요."


사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고작 4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노래를 감상한다. 하지만 그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걸 전달하기 위해 예술가는 무대 아래에서 오랜 시간 고뇌하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들이 그 노력을 철저히 숨기고 가장 예쁜 것을 우리에게 친절히 건네어줄 때, 우리는 '쉽고 편하게' 그 결과물을 즐긴다. 


'나는 쉬운 가수다'라는 소수빈의 이야기를 들으며 뜻밖에도 앙리 마티스가 떠올렸다.

얼마 전 제주도립미술관의 <앙리 마티스와 라울 뒤피전: 색채의 여행자들> 전을 방문했다. 앙리 마티스로 말하자면 한국에서도 이제 그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명하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예술가.


사실 전시회를 찾기 전에는 앙리 마티스보다는 라울 뒤피의 작품들을 더 기대했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즐거운 밝은 색채, 그리고 그 색채로 인해 강조되는 아름다운 형태. 그의 대표작이 전시회에 포함된 것이 아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시장 벽 한 편에 쓰인 앙리 마티스의 말을 보는 순간, 나는 그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나는 항상 내 노력을 숨기려고 노력했고, 사람들이 내가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결코 추측하지 못할 정도로 내 작품이 봄날의 가벼운 기쁨을 가지고 있기를 바랐다.


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미술작품들 중에서는 강렬한 감정을 승화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분투했던 것들이 드러난, 어둠을 품고 있는 작품들을 보며 항상 탄복했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밝고 편안한 작품들은 더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왕의 슬픔>, 1952
<달팽이>, 1953
<앵무새와 인어>, 1952


마티스의 작품들 중에서도 그의 생 후반기에 작업한 작품들을 보면 그가 화면을 구성하며 사용한 색채들이 빨강, 노랑, 파랑 등 대부분 강렬한 원색인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색가'가 높다고 여겨지는 색들인데, 색가란 색채의 시각적인 강도를 말하는 표현이다. 노란색이나 주황색은 다른 색깔과 섞여 있어도 한눈에 들어오거나 앞으로 나와 보이고, 갈색이나 검은색은 상대적으로 묻혀 보이거나 뒤로 물러나 보이는 식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면 사실 이렇게 색가가 높은 색들을 섞어서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색이 조합된 아이들의 꼬까옷을 보면, 귀엽긴 하지만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밝고 화려한 색들을 잘못 섞으면 자칫 촌스럽고 유치하다는 느낌마저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앙리 마티스의 작품에서는 그렇게 화사하고 각자의 힘을 가진 색들이 한데 어우러짐으로써 더 강렬하면서도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채도와 명도가 다른 여러 색을 조합해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 어찌 보면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런 노력을 간과했다. 이렇듯 통통 튀듯 밝은 작품들은 더 신나게,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눈에도 그의 작품이 그의 표현대로 '봄날의 가벼운 기쁨'을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너무 쉽고 편하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앙리 마티스가 그의 치열한 분투와 힘든 고뇌를 철저히 숨겼기에, 그의 의도대로 나는 그 기쁨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앙리 마티스도 소수빈처럼 '쉬운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을 '쉬운 사람'이라고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그가 쉬운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느끼는 쉽고 편안한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그것이 작가로서 앙리 마티스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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