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유 Apr 21. 2018

어느 화가의 <그려진 자서전>

Rembrandt Harmensz. van Rijn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직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기다- 부모님과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아이고 난 사진 찍는 거 싫어~그냥 너나 찍어!" 사진을 찍으면 이렇게 재밌는데 왜 사진 찍는 게 싫지? 어린 마음에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벌써 내가 어린 시절의 부모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사진 속의 자신이 너무 늙어보여서 싫은 것이다!  20년 전 필름 카메라 속 앳된 소녀는 대체 어디 갔는가. 통탄할 일이다.


아니, 그렇게 옛날까지 갈 것도 없다. 대학교 시절 유행했던 싸이월드 사진첩 속의 풋풋했던 나는 어디 간 걸까.

(사실 20대 때는 자의식 과잉이었던지 it's me라는 폴더에 무려 셀카를 따로 전시했다. 셀카보다 더 좋아했던 건 다른 사람이 찍어줬는데 마치 찍히는 걸 전~혀 몰랐다는 듯 카메라를 45도 정도 빗긴 각도를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어쨌든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회사 행사에서 찍힌 자기 사진을 보고 기겁했다고 했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며 "내가 언제 이렇게 늙은 코알라처럼 변해버렸지? 난 꿈에도 몰랐어..."라고 했는데, 전혀 코알라 같지 않다는 위로를 건네어야 했지만 그만 너무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사실 웃을 처지가 아닌데. 나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단기 기억증에 걸린 니모 친구 도리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요즘은 찍히 사진마다 눈이 퀭한 할머니 도리가 보인다. 정말 싫다.


어쨌든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사진을 찍는 게 싫어진다. 왜일까. 가장 찬란하고 젊은 시절의 모습만 기록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 내가 바라보는 거울 속의 나는 그렇게까지 늙어 보이진 않기 때문에 사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거울로 비춰보는 나의 모습보다 정확한 것은 바로 사진일 것이다.


사진이 없던 시절 사람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초상화였다.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스스로의 초상화인 자화상을 남겼는데, 자화상은 원하는 시간만큼 모델을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고 또 따로 모델료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즐겨 그려졌었다.


현대미술 이전의 예술가들 중에서 누구보다 많은 자화상을 남긴 사람은 바로 렘브란트일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스케치까지 포함하면 100여 개가 넘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야심만만한 20대 시절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60대의 모습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신의 변화를 꾸준히 화폭에 담았다.

사실 렘브란트의 삶의 궤적을 함수로 표현하자면 꾸준한 우하향이라고 할 수 있다. 초년의 이른 성공을 거머쥐었던 청년에게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난과 역경을 하나씩, 점점 더 많이 던져주었다. 예술가의 노년은 부와 명예를 한 손에 넣었던 청년은 온데간데없이 궁핍하고 초라했다. 하지만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자화상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21 세 / 1627



27 세 /1633


36세 / 1642


46 세 / 1952



55세 / 1661


63세(사망한 해) / 1669


그의 수많은 초상화를 보며 인상 깊은 것은 젊은 시절의 초상화에서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그려내었듯, 늙고 무력하며 곤궁했던 말년의 모습까지도 그 어떤 비약 없이 솔직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성공이 가져다준 화려한 옷과 장식을 두른 야심만만한 청년은 피로에 지친 눈망울의 중년을 지나 세상을 모두 달관한 듯한 노인으로 변해간다.


특히 그가 세상을 떠나버린 마지막 해에 그려진 초상화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을 전혀 이상화시키지 않고 마치 제삼자를 그려내듯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자신을 그려냈다.

늙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세상에 달관한 듯한 엷은 미소.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화려한 젊은 날을 뒤로하고 죽음이 드리운 그림 속의 자신의 눈을 마주했을 때 렘브란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나는 과연 현재의 나 자신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젊음의 시기를 지나 이렇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변해가는 나 자신을, 삶이 주는 과제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면서 변해가는 나 자신을 얼마나 태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자신을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늘 어려운 나에게 이 예술가의 담담한 시선은 놀랍다. 아니, 어쩌면 그 능력이 어쩌면 그를 화가로써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흔히 '그려진 자서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술가로서의 한 생을 수많은 자화상으로 녹여낸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어쩌면 그가 천국에서 들었다면 가장 자랑스러워할 표현일지 모르겠다.




회화가 완성되는 순간은 예술가가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다.
-렘브란트

A painting is finished when the artist says it is finished.
-Rembrandt Harmensz. van Rijn


매거진의 이전글 발레의 어두운 이면을 본 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