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말고 대파로 만든 오징어 파전
제주도 한달살이의 20일 차의 날이다. 어제저녁부터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은 ‘감사’의 마음과 먹고사는 일, 말 그대로 ‘생활’의 어려움과 그것을 해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다.
우선, 감사에 대한 이야기.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결정한 것은 작년 9월쯤이었다. 고3 입시 지도와 육아를 병행하며 진우에게 느껴지는 부채감에 절어 있던 나는 내년에 조금 쉬어야겠다는 말을 찬에게 했고, 찬은 그래 쉴 때가 되었다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온전히 세 가족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자는 이야기까지 흘러갔던 것 같다. 사기업에 다니는 찬이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결정을 해주었고 나도 그 결정을 따라 휴직을 결심할 수 있었다. 내가 휴직을 쉬이 결심하지 못했던 것은 나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 비슷한 것 때문이었다. 나는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끊임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것 치고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매듭지어 버리곤 하지만. 아무튼, 스물 일곱 1월에 결혼을 하고 스물여덟 12월에 출산을 하면서 내 또래의 친구들의 삶과 나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했었다. 내 나이면 원래, 저렇게 해외여행 다니고, 내 몸 하나 훌훌 챙기면 되고, 명절 내내 엄마 집 소파에 누워서 보내는 건데. 하면서. 그러면서,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더 잘 살아야지. 했고. 아기를 낳아도 일을 포기하지 않는 나, 일과 육아 다 잘하는 나, 결혼해서 참 행복한 나, 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출산 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 딱 6개월 쉬고, 진우 180일 때부터 여섯 살이 된 올해 2월까지 쭉 일을 했다.
제주도에서 지내는 20일 내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우가 이렇게 건강하게 여섯 살이 되어 따뜻한 5월에, 우리 가족 셋이 제주도에서, 내일 뭐 하고 놀지 하는 생각만 하면서, 지낼 수 있음에 대한 감사.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빨리한 탓에 내내 마음속에서 맴돌았던 지나간 어린 날에 대한 억울함이 훌훌 사라졌음을 깨달았음에 감사. 다시 오지 않을 서른셋의 5월의 시간을 무리해서 만들어준 찬에 대한 감사. 별 생각 안 하고 선택한 내 남편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이, 진우가 부족한 엄마, 아빠를 너무 사랑하는 밝고 예쁜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다음으로, 생활에 대한 이야기. 청주의 우리 집에 있을 때는 최소 한 끼는 밖에서 누군가에 의해 제공이 되었고 일정 시간 찬과 진우와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한 달을 우리 셋이 같이 ‘사는’ 일은… 이렇게 지내는 것은 진우 신생아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밥 세끼를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먹을지 결정하고, 날씨에 따라 어떤 활동을 할지 정하고, 하루 종일 진우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진우가 유치원에 가고 오빠가 회사에 가고 나는 집에 있는(혹은 학교에 가는) 일보다 배로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의견을 나누어 식사 메뉴를 정하고, 오늘과 내일 할 일을 정하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 후 잠자리에 드는 일은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이 되어 만났을 때보다 더욱 애틋하였고 뿌듯함을 주었다.
지난주에 보롬왓이라는 공간에서 열리는 대파축제에 가, 대파꽃이 활짝 핀 대파밭에서 대파를 한가득 수확해 온 일이 있었다. 대파를 뽑을 때는 대파에도 꽃이 있구나, 많이 뽑아가야지, 하면서 실컷 뽑아 왔는데 뽑아온 대파를 손질하기가 귀찮아 며칠 실온에 두었더니 끄트머리부터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찬에게, “대파 어떡하지? 너무 많고 갈색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냥 버려야 하나?” 했더니 찬은 “응응, 자기 편한 대로 해야지.”했다. 그 말을 듣고 대파를 버리는 나를 상상하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대파를 뽑을 때는 신나서 한껏 뽑아 왔으면서, 손질하기 귀찮아서 방치하고, 심지어 버리다니. 그런 내가 되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아침을 해 먹고 찬에게, “오빠, 나 지금 대파랑 냉장고에 있는 재료 손질해야 하니까 한 시간 정도 진우랑 놀아.”하고 대파의 갈색 부분을 잘라내고, 깨끗하게 씻고, 먹기 좋은 사이즈로 손질하고, 김치찌개를 끓여 김치찌개에 송송 대파를 넣었다. 점심에는 대파를 넣은 김치찌개를 먹었고, 저녁에는 손질한 대파를 길게 잘라 오징어를 넣고 오징어 대파전을 해 먹었다. 찬과 우도땅콩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나, 이 대파로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까 진짜 뿌듯해.”라고 했다. 찬은 “나도 이렇게 먹는 거 진짜 좋아. 진짜 맛있어.” 했다. 내가 “근데 왜 나보고 대파 버리라고 했어?” 물어보니, “그야 음식은 주로 자기가 하는데, 자기 힘들까 봐. 근데 이렇게 해 먹으니까 좋네.” 했다. 품을 들여 먹고사는 일을 해내는 것. 그것이 주는 뿌듯함을 매 순간 온전하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우리의 2025년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