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을 베풀기 어려운 세상
“친절에 감사드려요.”
“뭘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여자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내가 가르쳐준 길로 걸어간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헤매게 될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여자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남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쳤고, 나는 그 가르침을 평생동안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여자의 뒤를 따른다.
곧이어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걸음을 멈춘다. 여기다. 여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기억을 되살리려는듯 곰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얼굴에 띄운다. 나는 10초동안 숨을 천천히 내쉬고 자연스럽게 여자의 옆을 지나쳐 걷는다.
“저기요!”
여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어? 아까 길을 가르쳐주신 분 아니세요?”
“아니, 왜 아직도 여기 서계신 거죠? 혹시 제 설명이 어려웠나요?”
“그게, 아무리 찾아도 말씀하신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서요. 죄송하지만 다시 설명해주실수 있나요?”
“이런, 여기가 아닌데. 아무래도 제가 잘못 설명드린 것 같군요.”
나는 다시금 친절하게 길을 설명한다. 적절한 손짓과 친절한 어조, 상대가 확실하게 기억했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빼놓지 않는다. 여자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설명을 듣고는 확실하게 기억했노라고 말한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이번에는 잘 찾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친절에 감사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뜬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행복감에 젖는다.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언제나 나를 기분좋게 만든다. 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왔던 길을 지나쳐 걸어간다.
잠시 후, 나는 골목길 어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곧 여자가 지나갈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익숙한 얼굴이 골목길에서 튀어나온다.
“어?”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가리킨다.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이것 참 신기한 우연이군요, 3번씩이나 마주치다니. 아직도 못찾으셨나요?”
“제가 좀 길치라서요.. 죄송해요, 2번이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여자의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여러번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그녀같이 착한 사람의 심성에 꽤나 힘든 일일 것이다.
“마침 저도 그 근처에 일이 생겼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엔 제가 직접 안내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정말요?”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나도 같이 미소를 띄워준다.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뭐. 저를 따라오시죠.”
그리고 앞장서서 걷는다. 우리는 꽤 많은 길을 같이 걷는다. 나는 가벼운 농담과 이야기들로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그녀 역시 웃음꽃을 피우며 내 뒤를 따라온다. 완벽하다. 그녀가 도움을 필요로 할때 도움을 주고, 그녀가 곤란해 할때 앞에 나타나 주었으며,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로써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요즘은 친절을 베풀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나는 상황속에서도 완벽하게 친절을 베풀고 있다.
어느새 우리가 걷는 길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우리는 곧 어둡고 인적 드문 골목길을 마주하고 있다.
“여, 여기가 맞나요..?”
여자의 목소리에서 불안한 기색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약간 초조해진다. 안돼, 여자가 불안해하잖아.
“제가 자주 애용하는 지름길입니다. 이 길만 지나가면 금방이에요.”
여자의 얼굴에 안도가 퍼져나간다. 내 마음속에도 같은 감정이 퍼져나간다. 나는 천천히 골목길로 발을 들였다. 이 골목은 꽤나 길다. 길고, 어둡고, 인적 또한 드물다. 완벽한 조건이다. 골목 중간즈음 왔을때, 나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 이런! 제가 중요한 물건을 놓고 왔군요.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골목만 빠져나가면 바로 앞에 찾으시는 건물이 보일 겁니다. 저는 돌아가서 물건을 챙겨와야 할것 같습니다. 끝까지 바래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여자는 당황해 허둥거리며 말한다.
“아, 아니에요!! 여기까지 같이 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한걸요.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인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왔던 길을 돌아 골목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근처에 미리 주차해둔 차로 돌아가 입고 있던 양복 겉옷을 벗고 낡아빠진 가죽재킷을 입는다. 양복바지를 벗고 청바지를 입는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신발도 갈아 신는다. 가죽장갑도 빼놓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복면을 꺼내 쓰고는, 골목길로 달려들어 간다. 늦으면 안된다. 늦으면 모두 헛수고가 되어버린다. 골목의 3분의 2지점을 달릴즈음,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급한 발소리에 놀라 뒤돌아본 여자의 눈이 커진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놀란 표정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른다.
그후 몇분간은 괴로운 시간이 이어진다. 나는 여자의 몸 구석구석에 주먹과 발을 꽂아넣는다. 혹시 실수하여 여자가 크게 다칠까봐 힘조절하는 것에 애를 쓴다. 생명에 위기가 가거나 과도한 고통을 받는 부위를 피해 여자의 팔과 다리, 허벅지 바깥쪽을 중심으로 구타한다. 첫 수를 얼굴에 꽂아넣은 것은 단순한 실수다. 여자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견딜수 없었다. 눈을 쳐다보는게 아니었는데. 나는 속으로 반성하며 기계적으로 팔과 다리를 뻗는다.
계속해서 소리지르던 여자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다가 축 쳐졌다. 아무래도 기절한것 같다. 나는 여자가 확실하게 의식을 잃었는지,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부러진 곳이 있는지 구석구석 체크한다. 몸 구석구석에 멍과 피가 맺히고 왼팔과 오른다리에 금이 간것 같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골목길 밖으로 뛰어나간다. 차로 돌아가 다시 양복재킷에 팔을 넣으며 구두에 발을 밀어넣고, 복면과 장갑을 벗어 던진채 서류가방을 들고 다시 골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있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로 뛰어간다.
“괜찮으십니까?”
그녀를 흔들어 깨운다. 물론 다친 부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그녀의 정신이 돌아오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업고는 병원을 향해 달려간다. 그녀는 내 등을 눈물과 침으로 적시며 감사하다고 연신 울어댄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는 경찰과 그녀의 보호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길을 알려주다가 잠시 놓고온 물건을 들고 돌아와보니, 그녀가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어 병원으로 데리고 왔노라고.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울며 고맙다고 부르짖고, 경찰과 의사들 또한 나에게 정말 친절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격려한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있을 친절을 베풀었을 뿐이라 말하고 치료를 받고 안정된 그녀를 만나러 들어간다.
“친절에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녀가 나를 보고 눈물 지으며 감사를 표한다.
“뭘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아버지는 늘 나에게 남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쳤고, 나는 그 가르침을 평생동안 가지고 살아왔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요즘은 친절을 베풀기 힘든 세상이라는 점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들어서라도 친절을 베풀고 있다.
나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