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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릉밈씨 May 19. 2023

찰스 3세의 영욕의 대관식

Zadok The Priest

edward elgar pomp and circumstance

 살다 살다 왕실의 대관식을 본다. 유럽 왕실에서 유일하게, 아니 21세기로 쳐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영국 왕실 찰스 3세의 대관식이다. 시대와 맞지 않는 구닥다리 의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통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지금 안 보면 언제 또 보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버이날 주간,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와 유튜브 생중계를 켰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각국 왕실의 주요 인사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모습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꼬장꼬장한 챙이 큰 모자와 공통적으로 발가락을 꼬옥 가리는 구두를 신은, 보수적으로 차려입은 귀족, 정치인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기이했다.


 73년 만의 즉위와 대관식.

 

 찰스 3세와 카밀라가 그동안 얼마나 왕관을 바라고 기다려왔는지, 굳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듣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그 욕심은 축소화한다고 했지만 대관식 곳곳에 아주 잘 나타나 있었다.

 일단 대관식 전부터 카밀라의 Queen Consort 호칭에서 Consort가 빠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재혼하면서 Princess Consort의 호칭만을 쓰겠다 공언하였던 부분이었다. 이것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Queen Consort라고 바뀌더니 기어코 Queen으로 바뀌었다. 왕실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는 작년부터 카밀라의 성장과정, 카밀라라는 인물에 대한 조명을 긍정적으로 비추는 게시물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구시대적인 행위로 한 인물에 대한 우상화 작업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카밀라의 페이지 보이로 등장한 카밀라의 친손자들과 조카 손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살아있을 때는 자신들의 가족들은 일절 행사에 등장시키지 않고 숨죽이며 지내던 카밀라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지난 크리스마스 예배 때부터 자신의 자식들을 왕실 가족행사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식으로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보란 듯이 손자들이 페이지 보이로 등장했다. 손자들에게 자랑할 모습의 왕비는 아닐 텐데?


 마지막으로 성유(聖油) 의식.

 성스러운 의식임은 알지만 대관식이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와중에 성유 의식만큼은 가림막으로 철저하게 비공개되었다. 뭐가 그렇게까지 신비하고 은밀한 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찰스 3세 부부에 대한 개인적인 이런저런 서사가 쌓여서인지 무슨 특권의식처럼 느껴져서 아니꼬웠다. 왕족의 특별함을 보여줄 시대와 경제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영국 만의 소프트파워가 되긴커녕 이번 대를 시작으로 영국 왕실이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생활적으로도 비호감 부부인 점을 인지하고 조용히 사는 것이 좋았을 것을...


 그래도 한 가지 너무 좋았던 점이 있었다. 이미 선대 국왕 부부의 장례식 때 몇 번 연주되긴 했지만 그때에는 바빠서 시청하지 못한 관계로 이번에야말로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의 Zadok The Priest라는 곡을 실제로 보고 듣게 된 것이다.


Handel: Zadok the Priest ▶ https://youtu.be/5xWhclVLQyI


 흔히 챔피언스 리그 노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곡은 헨델이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해 바친 노래이다. 원래 독일 사람인 헨델은 앤 여왕의 지원 하에 영국으로 망명하여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며 음악활동을 했다.


 워낙 브릿팝이 유명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클래식 분야에서 약한 영국에서 Zadok The Priest 외에 들을 만한 곡이 간간히 있는데, 아래와 같다.


+ Edward Elgar♪ Pomp And Circumstance : 소위「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유명한 곡

+ Ralph Vaughan Williams♪ Fantasia On Greensleeves : 영국 민요를 살린 곡. 해리 포터 OST 같기도 하다.

 

 좋은 고전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것은 전통으로 지속해 남기는 건 좋은 것 같다. 나는 찰스 3세 이후의 영국 왕족들이 선대가 그러했듯이 전쟁 중에도 수도와 궁을 지킨다거나, 국민을 위해서 평생 봉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젠 없다고 본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연히 운 좋게 귀한 이름의 집안에 태어난 것뿐임을 자각하고 국민들을 위해 전통과 유산을 지키는 존재로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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