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재혼 생각 없냐는 이야기를 듣다가 열폭하여 다시 쓰게 된 나의 이혼 후 근황 이야기는 처음 생각대로라면 그래도 언젠가는 로맨스 판타지를 꿈꾸고 싶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싶긴 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내 실제 상황과 기분은 전혀 그게 아닌 것이다.
최근 반년 동안 업무를 하면서 나를 정말 정말 힘들게 한 타 부서의 동갑내기 동료 한 명이 있다. 소위 '자유 영혼'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는 대체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항상 옆에서 업무 진행 정도나 데드라인을 체크해 주어야 하는 동료이다. 그게 점점 심해지더니 할당된 몫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종국에는 업무의 상당 분량을 진행한 상태로 넘기며 마무리만을 요청 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업무 펑크가 났다. 자료 작성을 해 놓고 제시간에 제출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제출을 까먹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조차 까먹었다. 그를 케어하는 것이 더 이상은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 마침 타이밍 좋게 그가 퇴사를 알려왔다. 제발 없어져주길 간절히 바라왔으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당일 오후 중에 잠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예정되어 있던 회의를 조정하고, 내부에 법인카드까지 빌려 이제 이야기 나누러 가실까 메시지를 보낸 순간,
'내일 오후 이야기 아니었나요? 내일 오후 3시에 커피 한 잔 괜찮으실까요?'
라는 것이다. 사람이 기껏 시간과 돈을 준비해놨더니 쯧!
다음 날, 부랴부랴 출근하여 그날 하루 할 일을 정리하다가 전일 잡은 오후 약속을 재차 체크하려고 한 순간 회사 게시판에서 그의 연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연차인 주제에 약속을 잡아? 급한 용무가 있어 사용하게 된 연차라면 내게 부재를 알렸어야지, 미친놈.....
'지금 오후에 이야기 나누기로 하셨으면서 연차를 쓰신 거예요?'
분노의 메시지를 보냈다.
- '네에. 오후에 커피 마시러 가려고 했어요.'
'연차를 쓰고 회사에 왜 커피를 마시러 오세요?'
- '오전이랑 오후에 면접이 있는데 그 사이에 잠시 들리려고요.'
거짓말쟁이 새끼. 나에게 욕을 먹는 것을 모면하고자 헛소리에 뻘소리를 거듭했다. 또 만났다, 미친 회피형.
오랜만에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의 전 남편을, 전 남편의 거짓말들을 다시 선명히 떠올렸다. 불륜 발각을 피하기 위한 온갖 핑계와 앞뒤 안 맞는 개소리 퍼레이드.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무슨 착한 아이 콤플렉스인지 믿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던 곤욕스러웠던 기억들. 30이 넘어서도, 40이 가까워져도, 차라리 눈 딱 감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빠르고 깔끔하게 상황이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못 배웠다. 이런 유형과는 더는 마주할 것 없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그들은 그들의 판단 미스를 절대 깨닫지 못하므로 그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없고, 그냥 손절이 직빵이다.
그런데 이런 놈들은 이상하게도 회사 출근은 회피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은 회피하지 않는다. 왜? 회피형이잖아. 회피 콘셉트에 충실해야지. 그 동료는 연차를 끝내고 복귀하자마자 식사라도 하지 않을는지, 커피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다시 잡지 않을는지 물었다. 새로 만들어질 프로젝트에 TF로 참여하지 않을는지 권유하였다. 아니 퇴사한다며..........
싫습니다. 나는 이제 조금이라도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괴롭기만 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숨도 쉬지 마시고,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마시고, 말은 당연히 절대 시키지 마시고, 그냥 죽은 사람이 되어주세요..!
나는 이제 회피형 앞에서 내 안에서 언제까지고 상기될 괴로운 기억을 곱씹으며 회피로 맞대응을 한다. 공사 관계없이 회피형을 만날까 봐 지레 사람을 회피하는 성향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