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는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어?"
동생이 물었다. 지나간 것은 뒤돌아보지 않는 주의인 나였지만 이혼 소송 당시만큼은 내가 왜 이딴 거지 같은 놈이랑 엮여 호적이 더럽혀지고 이혼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야 하나 결혼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도대체, 왜, 결혼을 제도화해서, 국가가 뭔데, 사랑을 왜 호적으로 세팅해, 마음의 약속이지 등등
- "아니.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변함없이 똑같이 살 테고, 애초에 삶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나는 답했다. 시간을 되돌리면 나는 다시 중간고사랑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고, 수능에 매진해야 하고, 학점 관리, 취업 준비, 커리어 관리.. 를 해야 한다. 지금도 가끔 꿈에서 시험을 치는데 깨고 나면 끔찍하다.
"으응 엄마한테도 물어봤는데 엄마도 비슷하게 답하더라고. 다시 살아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고, 지금이 좋대."
남녀관계도 끊임없는 실험과 챌린지라며 멋들어진 밀당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남녀관계를 떠나 애초에 관계라는 것은 결국 책임을 다하냐 마냐가 결정짓는 문제인 것 같다. 관계에 끝이 다가왔다면 그것은 어느 한쪽이 책임을 다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고, 최선을 다했기에 끝이 난 관계에 일말의 미련이 없다.
그래서 결혼도 마찬가지. 반복할 생각이 없다.
첫 결혼에서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억누르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소송 시 아무 망설임 없이 속전속결로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할 수 있었다. 겨우 후련해진 나에게, 이미 한 번 최선을 다한 나에게 다시 책임을 다짐할 관계인 연애나 결혼에 대해 ‘다시 해야지', '재혼 생각해야지'와 같은 말은 엄청난 각오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내게 그 말은 다시 달릴 준비를 해보라는 것이다. 가볍게 건넬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다르겠지.
마인드를 바꿔봐. 생각을 좀 바꿔봐
왜 연애를 위해 눈을 낮추라거나 생각을 바꾸라거나 자꾸 뭘 바꾸라고 하는 것일까? 그게 어떻게 바뀌어요, 내가 겪은 일들이 있고 살아온 결이 있는 건데..... 따스한 시선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마음에서 비롯된 한마디라는 것을 아주 잘 알지만 마인드와 생각을 바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줄, 굳이 책임을 다짐하지 않아도 책임을 다하고 싶은 사람이..... 죽기 전엔 나타나겠죠?
그때까지는 자연스럽게 (이)혼후순결을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