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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릉밈씨 Apr 14. 2024

연애 중인 나 자신이 사랑스러울 뿐

 최근 몇 년, 스스로 사주가 세니 안 좋니 해대다가 처음으로 큰맘 먹고 미신에 돈을 써보기로 했다. 내 발로 직접 철학관에 찾아갔다. 약간 재미로 보고 싶은 생각이 있기도 하여 예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직장동료의 사주부터 먼저 보기 시작했는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기본적인 사주풀이 정도로 진행되었고, 나도 옆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겁게 풀이를 들었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생님의 표정이 많이 안 좋아졌다. 나도 괜히 떨리기 시작했다. 한참 인상을 쓰며 사주를 푸시다가 하시는 말씀.

 "장군까지 오를 팔자인데 군대를 가 보지 그랬어요? 아니면 경찰, 검사 쪽인데.. 왜 안 했지?"

음, 일단 키가 160cm 미만입니다^^ 지원조차 할 수가 없어요.

 

 독거노인으로서의 미래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나는 가족들에게 기대지 않고, 나라에도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게 가장 궁금하였다. 그러나 70이 조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선생님은 내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부분에 대하여 마음대로 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했어요?”

안 했는데요?”

 “정말 안 했어요?”

- (안 한 상태이니까) 안 했어요.”

 “정말요?”

- “사실 한 번 한 적이 있긴 해요.”

 “결혼했으면 백전백패. 강아지 키우지 마세요. 남자 만나고 싶으면 나이대나 사회적 지위가 맞는 사람이 아니라 최소 7살 연하로, 강아지 대신 키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나세요.”

 딱 저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고, 대충 위와 같은 느낌으로 풀이하셨다. 어찌 됐건… 사람 대신 강아지? 물론 배변은 스스로 가릴 줄 알긴 하겠으나, 그보다 애초에 앞길 창창한 연하의 남자가 7살 이상의 돌싱녀를 왜 만납니까?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강아지를 대체할 만한 사람을 찾으면서까지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백호살 세 개. 기운이 왜 이렇게 세냐며, 때문에 밑으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를 만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은데, 그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건강한 연애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찌 되었건 연하에게 있어 연상의 사람에 대한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나 스스로 바뀌면 되지 않냐고? 왜? 타고난 나 자신을 바꾸면서까지 연애라는 게 꼭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굳이 굳이 상대에게 있어 건강하지 않을 연애관계를 형성하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연애해 봤자 어차피 상대보다는 연애 중인 나 자신, 사랑에 빠진 내 모습, 지고지순한 내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 보일게 뻔한데..... 참 어렵다.


 - "저는 재혼 생각이 없어요."

 "앗, 괜히 풀이해 줬네요. 다행이에요. 결혼 안 해도 되어요. 하지 마세요. 그리고 요즘은 사실혼 관계로 파트너 등록하고 충분히 자식 낳고 살 수 있으니까 그런 쪽도 고려해 봐요."

 연식이 꽤 되시는 것 같은데 세상사에 대한 새로운 공부를 멈추지 않는 할아버지이시네. 사주팔자에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나와있기라도 한 것인지 동거제도에 대해 열심히 어필을 하셨다.


 안 그러셔도, 네, (이)혼후순결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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