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이스로 된 모든 게 피싱이다

문득 생각나서 푸는 나의 흑역사

by 정릉밈씨


GKXwBLjbgAAZ_d2.jpg 9시 뉴스 中



수많은 흑역사 중에서 보이스 피싱을 당할 뻔한 적도 있다.


출근하자마자 한 전화가 왔다.

"검찰입니다. 명의가 도용된 것 같아요. 본인 명의로 중고거래 사기 신고 및 소송이 걸려있네요. 지금 문자로 구속영장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 보십시오."

가슴이 무너졌다. 내 주민등록번호, 거주지 모두 정확한 정보로 구속영장이 작성되어 있었다. 나는 검사가 시키는 대로 연차 처리를 하고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일단은 유선으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혹시 아이폰 사용자이신가요? 아이폰으로는 검사를 정확하게 진행할 수가 없으니 근처 중고폰 거래점을 찾아서 안드로이드폰을 구매하세요."

8월의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나는 내 인생을 구하기 위해 20분 남짓한 거리를 걸어 가장 가까운 중고폰 거래점에서 약 40만 원을 주고 안드로이드폰 1대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다시 제대로 조사를 받기 위해 다시 왔던 길을 걸어 대형카페로 향했다.

"안드로이드폰 구매하셨나요? 그럼 이제 USIM칩을 교체하시겠어요?"

- "어떻게 교체하는 건데요? 도구 없는데요."

"손톱으로 빼세요."

- "손톱이 짧은데요."

나는 손톱을 굉장히 짧게 깎는다.

"하..... 중고폰 거래점에 가서 USIM칩 빼는 도구를 받아오시겠어요?"

이미 35도의 더위에 20분 거리를 왕복하였다. 불쾌지수는 한계치를 넘어섰다.

- "그걸 왜 지금 말씀하세요? 더운데 또 가라고요?"

"어어? 지금 대한민국 검사한테 소리를 지르십니까? 바로 구속영장 발부하고 수감시킬 수 있습니다!"

- "아, 그러시던가요. 아니다. 제가 그냥 자수할게요. 근처 경찰서로 갈 테니까 구속을 시키던지 수감을 시키던지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진짜 나를 데리러 오라고 근처 경찰서에 전화하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를 데리러 온 경찰들은 이것이 보이스 피싱임을 알려주었다. 1시간 반동안 귀 기울여 들은 남자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니!!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분노의 눈물이 뚝뚝 터졌다. 울면서 시뻘건 얼굴로 다시 방문한 내가 방금 거래한 안드로이드폰을 환불해 달라고 하자 감사하게도 중고폰 거래점 사장님은 아무 말 없이 환불해 주셨다.


이렇게 씨게 겪고 보니 보이스 피싱 전화뿐이 아니라 점점 모든 보이스가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연인의 달콤한 유혹의 보이스, 감미로운 노래로 전하는 신기루 같은 감성의 보이스... 방송이건 주변이건 모든 말에는 화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것이 결코 나쁜 의도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거짓과 다름없는 것이 섞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업무회의 때 발언한 내용이 다르고 회의 끝나자마자 발언하는 내용이 다르다. 보이스라고 표현하였지만, 말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사람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기억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듣는 사람의 입장에 맞춰 전달하는 것이기에 기계가 아닌 이상 조금씩은 표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게 어떤 듣는 사람에게는 피싱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늘 하루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스 피싱을 안 하고 보냈을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길 왜 가냐고요? 내가 가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