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란

배고픔의 다른 이름

by 김태진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실 때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슴 한쪽이 따뜻한 물수건처럼 서서히 젖는다.

1925년, 열두 살 소녀 작가 최순애가

서울로 떠난 오빠를 그리워하며 쓴 동시가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꼭 백 해.

몇 해 뒤 작곡가 박태준 님이 곡을 붙이며

〈오빠 생각〉은 국민 동요가 되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그리움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둡던 시대를

조심스레 비추는 등불 같았다.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그 한마디 약속에는 설렘과 허망함,

기다림의 모든 결이 켜켜이 스며 있다.


그 노랫가락이 마음속에 퍼지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도 천천히 불러 세워진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방을 이리저리 뒤졌지만

남은 건 양파 한 덩이뿐.

매운 냄새에 눈을 비비며

기름도 없이 프라이팬에 볶았다.

향긋한 단내가 코끝을 스칠 즈음,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거 뭘 하고 있니?”

“배가 고파서요.”

“……”

“히- 맛있어요!”


한마디 없이 휙 돌아 나가셨다.

아들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우셨던 게다.

책 영업이 잘 안 되었던지, 힘이 없으셨다.

남루한 바지며 소매 끝이 해어진 양복을 입으셨던 아버지.


그날따라 어머니는 먹거리를

챙겨 두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배가 고파 아래창자가 꼬르륵거릴 때,

나는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며

방구석에 머리를 파묻고 울었다.

물수건을 쥐어짜듯

배가 뒤틀리던 그때,

기다림은 곧 배고픔이었다.


얼마 전, 한 문학재단 공모전에

수필 두 편을 응모했다.

창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의 기억과

장애인 한 분과 나눈 교감을 담은 글이다.

며칠을 고쳐 읽으며 정성을 다했고,

마감까지 사흘이 남았지만

원만한 퇴고 덕분에

먼저 전자우편으로 보낼 수 있었다.

심사 결과 발표는 한참 남았는데도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에

뜸북새 노랫가락이 다시 입가에 맴돈다.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의 내 마음이,

어린 시절 배를 움켜쥐고

엄마를 기다리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


어릴 적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며 생각했다.

서울로 떠난 오빠는

정말 비단구두를 사 오셨을까.

그 손에는 어떤 선물이 들려 있었을까.

철없던 나는 울며 노래했고,

노래도 나와 함께 울었다.


기다림은 늘 아프다.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


그 모든 기다림은

가슴을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 가뭄에 비 기다리듯

그 절절한 아픔을 품는다.


떠난 아들이 밟고 지나간

동구 밖 나무 곁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말이다.

지금 내 가슴에도

그 기다림이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 떠나보낸 원고가

잘하고 있을까.

심사위원의 물음에

떨지 않고 대답은 했을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잘 표현했겠지?


달력을 바라보는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진다.

기다림과 배고픔은,

결국 고향이 같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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