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다 어제 사당역의 한 고기집에서 대학 동기 셋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이 자리를 만든 건 대학 시절 내가 참 좋아했던, 삼수 끝에 입학했던 형이었다. 결혼식 때 너무 바빠서 모바일 청첩장으로 대신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며, 늦게나마 제대로 된 밥 한 끼 사고 싶다고 우리를 불러 모은 것이었다. 불판 위에서 소고기가 익어가는 소리 사이로, 친구들의 얼굴에는 10년 전의 앳된 표정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갔다.
사실 고기보다 좋았던 건, 정말 오랜만에 '뇌에 힘을 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토씨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맥락 없는 소리를 해도, 10년 전 흑역사를 꺼내도 그저 "미친놈"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들. 유별난 위생 관념으로 우리를 웃게 했던 친구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예정이고,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는 곧 둘째를 만난다고 했다. 우리는 30대 직장인이 아니라 맹물만 있어도 웃음이 터지던 대학생 시절로 잠시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다가,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자산'으로 넘어갔다. 웃음기가 걷힌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이들의 현실적인 대화였다. 자리를 만든 형은 특별히 성공한 사업가도, 대박을 터뜨린 투자자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적절한 타이밍에 집을 마련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다른 친구들의 자산 이야기도 듣는데 머리를 울리는 차가운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정말 쉼 없이 달렸다. 졸업 후 휴식 기간 한번 없이 일만 했다. 내 목표는 명확했다. IT 업계에서 인정받는 것. 마침내 원하던 회사에 합격해 '판교'로 첫 출근을 하던 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그곳에서 커리어를 쌓으면 내 인생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거라 믿었다. 나는 순진했고, 그래서 치열했다.
하지만 자산의 크기는 성실함의 총량과 비례하지 않았다. 그저 성실하기만 했던 나는 여전히 집 한 채 살 형편이 안 된다. 내가 직무 역량이라는 우물을 깊게 파는 동안, 친구들은 자본주의라는 더 넓은 바다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10년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돈에 눈을 돌리지 않은 덕분에 나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았고, 누구보다 내 일을 사랑하는 전문가로 성장했으니까. 다만, 친구들과의 만남은 내게 '다음 단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언제까지 순수한 전문가로만 남을 것인가?
나이가 들어가며 내 시야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거창하게 "이제부터 사업을 하겠다"며 힘을 주고 싶지는 않다. 다만,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찾던 정답을 이제는 밖에서도 찾아보려 한다. 마침 세상은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쥐여주었고, 내게는 지난 10년이 만들어준 단단한 경험이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조금 덜 순진하게, 조금 더 영리하게 살아보려 한다. 친구들과 실컷 웃고 떠든 덕분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막함보다는 묘한 설렘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성실했던 나의 과거에, 자본주의의 감각을 한 스푼 더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