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개봉 영화 <her>를 보면서 나도 사만다 같은 인공지능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24시간 어느 때라도 대화할 수 있고, 조언을 해 주며, 가끔은 내 일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심지어 목소리가 스칼렛 요한슨이다!
최근 챗gpt의 비약적인 성과를 보면 나에게도 곧 사만다가 생길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마냥 좋은 일인가?
어처구니 없게도 요즘 인공지능은 예술가의 영역까지 잠식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예술의 영역은 가장 나중에, 혹은 영원히 안 될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그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얼마전 작곡가 김형석이 한 공모전에서 1등을 선정하고 보니 인공지능을 이용한 작곡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데, 사람이 작곡했다고 헷갈렸다면 음악 영역에서의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
생성형 AI 미드저니가 일러스트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고, 미드저니가 3분 만에 생성한 회화를 보면 실제 그림을 촬영한 것과 분간하기도 어렵다. -프린트 기술이 더해지면 질감도 똑같을 것이다.
글쓰기는 어떤가? 이미 많은 기사를 인공지능이 쓰고 있고, 미국 월스트리저널은 AI가 생성한 쓰레기 정보들이 인터넷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는 이런 쓰레기 정보를 거르는 AI까지 개발하는 중이라는데..
몇 년 후에는 인공지능과 소설 쓰기를 경쟁해야 할 판이다.
얼마전 한 친구에게 들은 얘기, 인공지능이 결국 공연.예술계에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 시킬 것이라는데. 그의 논리를 들어보면 그럴 듯하다. -일일이 사실확인을 못했으니 참고만.
예전에는 인기번역가라고 해도 1년에 번역할 수 있는 책의 수가 제한적이었지만, 이제 초벌 번역을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감수만 하다보니 더 많은 책을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네임밸류 있는 번역가에게 일을 맡기고 싶을 테니, 번역 작업에 쏠림 현상이 생기지 않겠느냐.
오디오북도 그렇단다. 목소리 좋고 유명한 연예인들의 오디오북이 인기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역시 녹음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특정 연예인 버전의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AI가 있으니 사용 허락만 해주면 얼마든지 특정 연예인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생산할 수 있다. 성우들은 어쩌라고..
배우 시장도 비슷하다. 나이에 장사 없다고 주름진 얼굴을 감당할 수 없어 고등학생 연기는 다른 배우에게 맡겨야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런 문제도 쉽게 해결한다. 필요한 것은 배우의 초상권 사용에 대한 권리획득일 뿐이다.
콘텐츠 시장은 불확실성이 큰 시장이다. 그래서 기존 작가, 배우의 명성이 투자의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예전에는 아무리 잘나가는 작가나 배우라도 참여할 수 있는 작품에 제한이 있으니 신인들이 새로 진입할 여지가 있었다고 하지만, AI가 시공간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뉴비들이 설 자리는 점점 작아지지 않을까? -최근 올드 스타들이 속속 스크린에 돌아오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사 영화 한편을 거대 AI가 작가, 배우, 스탭들의 참여없이 컴퓨터 조작만으로 제작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전 헐리우드는 유사한 문제로 작가와 배우조합이 파업했었다. 그나마 명성이 있는 사람은 초상권이든 뭐든 팔아 먹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명성이 없으면 도전할 기회조차 사라지는 것 아닐까?
큰 흐름을 타고 몰려오는 기술의 힘에 저항 해봐야 무의미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절대 인공지능이 침탈하지 못할 것 같은 영역으로 도망쳐야 하나? -이러다가 다른 의미의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슬쩍해간 내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 보나? -메이저 언론사면 모를까 나같은 개인에게 10원이라도 돌아올 가능성은 제로다.
막지 못할 바에야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나도 손쉽게 창작할 수 있는 노하우를 축적할까?
아니면, 그래도 내 글이 인공지능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봐? -여기서 더 노력을? 또해? 더해?
모르겠다.
그래도 글이 쓰고 싶어 쓰는 것이고 내가 글 쓰는 자유마저 인공지능이 뺏어가지는 않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역시 모르겠다.
그림 그리는 분, 음악하시는 분, 연기하시는 분, 여러분들은 어찌 하시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