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을 지나가다가 공부 좀 했다는 남녀가 총출동했다는 '나는 솔로 20기 모범생 특집'을 잠깐 보게 됐다.
흥미를 끄는 대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환경적으로 질투가 제거된 사람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나름 공부 잘해서 영재고에 들어갔는데 주변에 똑똑한 애들이 넘쳐나서 경쟁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였다. 수준이 비슷해야 질투라도 하는데, 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친구들은 벽으로 느껴질 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공대에 입학해 물리학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자줏빛 샤방샤방한 스커트를 입고 강단에 오른 교수가 해맑게 웃으며 '가우스 정리와 체적적분 개념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오! 가우스, 알지 알지. 대수학 천재.
(잠시 후) 알긴, 개뿔!
교수는 가로 2.5미터 정도의 칠판 앞을 왔다갔다하며 3번 정도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는데 내가 기억나는 건 치마를 팔랑거리며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반복해서 맡았던 향수 냄새뿐이었다.
2시간이 넘는 강의가 끝났을 때 그것을 이해한 학생은 몇이나 있었을까?
물론 가우스 다운 획기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오 저런 방법이!'라며 감탄하기는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이해한 것은 저런 수식을 알아낸 가우스는 천재라는 것, 그걸 외워서 설명한 교수도 상당한 능력자라는 것 그리고 나는 이런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국어2, 사회2, 지리2 문제집 3권을 구매했고, 그해 말 학력고사를 다시 치렀다.
철학과에 입학해서도 한번 씩은 내 인생의 갈림길이 된 그날의 사건을 떠올렸다. 그리고 궁금했다.
저런 복잡한 수식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보고 있을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수학자가 말했다.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하려면 가우스 정규분포 곡선을 나타낸 함수를 봤을 때, 풀이 없이 '맞네'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한다고.(아래 함수입니다)
이게 풀이 없이 가능해? 풀지도 못함.
고등학교 때 수학을 가르쳐줬던 '아는 형'은 내가 중간고사에서 틀린 문제를 좀 풀어 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답은 알겠는데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모르겠다."
"왜요? 답이 뭔데요?"
"답은 4번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면 말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냥 4번인데."
실제 '아는 형'은 문제를 10초 쯤 노려보더니 손하나 대지 않고 답을 맞춘 것이었다. 그냥 4번인데 '이걸 왜 모르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참고로 '아는 형'은 카이스트를 조기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갔다.
천재는 이과생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카뮈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고 휘갈겼는데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보르헤스는 9살 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에스파니아어로 번역해 신문에 투고했고, 비트겐슈타인은 1차대전에 참전해 포탄이 날아오는 관측소에 근무하면서 '논리철학논고'의 중요부분을 완성했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벽을 뛰어넘는 천재들이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이 쓴 책을 읽고, 천재들의 유산을 향유하며 잠시나마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지만 근처에나 갈 수 있을까?
부러움과 시기심도 어느 수준을 넘게 되면 질투조차 생기지 않는다.
나는 솔로, 광수가 말한 것처럼 질투가 제거되는 것이다.
계속 아랫동네에 살다보면 윗동네가 있다는 것도 잊고 지낸다.
위를 보고 살아야 하나, 아래를 보고 살아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눈을 감고 살아야 하나.
나는 뭔가 어정쩡하다.
그럭저럭 살지만 여전히 갈피를 못잡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