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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10. 2024

좋아하는 것에 좋아하는 것을 얹어서, 네그로니

칵테일 추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쇼펜하우어의 명언,


"세계는 나의 세계다."


비트겐슈타인의 명언,  


이 두가지의 명언에서 추론한 내 결론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같이 뭘 해도 의미없을 것 같은 날에는 칵테일 네그로니를 마시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좋아하는 것을 듬뿍 얹어서 '나'를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칵테일 네그로니에 대한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토리는 카밀로 네그로니 백작에 대한 것이다. 1919년 모험가이자 도박꾼으로 박진감 넘치는 인생을 살던 네그로니 백작은 뭔가 룸펜짓을 하다가 바텐더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거기, 탄산수 타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진을 섞어 주게." 


당시 바텐더는 네그로니 백작이 즐겨 주문했던 칵테일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있었는데, 아메리카노(커피 아님) 역시 베르무트와 캄파리가 들어가는 독주였던 것이다. 때문에 탄산수를 넣어서 희석하려던 것인데 거기에 물 빼고 40도 짜리 진을 섞으라니..


당황한 바텐더의 얼굴을 보며 네그로니 백작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뭐 어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좋아하는 것을 섞어서 마시겠다는 것인데."


바텐더 고유의 레시피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네그로니의 맛은 40도(진)+40도(베르무트)+40도(캄파리) 를 섞어 만든 것치고는 잘게 터지는 단맛이 기분을 업시킨다. 

게다가 은은한 단맛을 입에서 굴리다보면 금세 취기가 올라오며 우울함을 느슨하게 만든다. 느리게 산책하며 존재의 성가심을 짓밟아 다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더불어 네그로니는 국내에서 별로 인기 없는 칵테일이기 때문에 바텐더에게 주문하면 은근한 환대를 받을 수 있다. '술 좀 아는 룸펜인걸?'


"한잔 더, 이번에는 진을 좀 더 넣어서 쓰게. 요즘 단맛에 중독돼 물러진 것 같아." 


그리고 나의 전성기를 떠올린다. 뜨겁고 맹렬하며 지치지 않았던.



"A Lannister always pays his debts"
"눈에는 눈, 구독에는 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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