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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09. 2024

1. 사후세계에 대한 계약서

프롤로그


가까운 미래,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모털 컴퍼니(Motal Company)는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을 수퍼컴퓨터 안의 가상 세계로 전송할 수 있는 소울 트랜스퍼링(Soul transferring)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때문에 임종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죽음 대신 가상세계로 의식전송을 선택했으며 포에버월드(Forever World)라 불리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현재 700만 이상의 거주민이 살고 있다. 

포에버월드의 거주민은 가상세계 속에서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느끼고 생활할 수 있으며 각종 질병과 노화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살 수 있게 됐다. 

다만 ST(의식전송)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포에버월드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은 영생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전 세계 모털 컴퍼니의 클리닉 건물은 모두 같은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구역별로 커다란 블록처럼 생긴 정육면체 건물은 회색 외관을 가지고 있고, 내부로 들어가면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바닥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통 하얀색이다. 

설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삶은 회색이지만 죽음 이후에는 하얀 천국과 같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정작 그 안에서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지현우는 백색 알레르기가 있어서 옅은 초록색이 감도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지현우는 모털 컴퍼니의 시스템 엔지니어로 고객의 의식을 수퍼컴퓨터 안으로 전송하는 기술적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오늘 오전 일정은 클리닉 상담과정에서 기술적 자문을 해 주는 것이다. 상당 결과에 따라 고객은 의식전송 여부를 선택하게 되는데 의식전송 계약이 성사되면 상담사와 지현우는 각각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실제 의식전송보다 더 중요한 절차로 볼 수 있다. 

스위스 본사에서 교육연수를 마치고 한국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한 지 5년째, 이제 고객의 첫인상만 봐도 의식전송을 선택할지 아닐지 대충 판단된다. 

“오늘은 상담만 받는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상담은 무료에요. 무료. 맞죠? 선생님?”

부모로 보이는 노인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던 중년 여자가 지현우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네, 상담은 무료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머님.”

지현우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둘을 맞았다. 

“상담은 뭐하러 받아? 난 그냥 죽을 거라니까. 넌 왜 죽겠다는 사람을 못 살게 해서 난리니? 사는 게 뭐 좋다고.”

노인의 말투에는 과장된 짜증이 잔뜩 묻어난다. 이런 경우에는 십중팔구 의식전송을 선택한다. 지현우는 속으로 ‘열심히 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옆에 있던 상담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상담사도 같은 걸 느꼈다는 미소로 그에게 화답한다. 

“어머니, 포에버월드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훨씬 신날 거에요.”

보호자와 노인이 상담석에 위치했다. 이제 절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어머님, 계약기간은 몇 년으로 생각중이세요?”

상담사는 절차에 따라 계약기간부터 물었다. 몇 년을 포에버월드에 머물다 죽을 것인지 묻는 질문이다. 듣기에 따라 거북할 수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럽다.

“기본이 몇 년이에요?”

보호자가 묻는다. 

“기본은 2년입니다. 물론 언제든 연장도 가능하시구요.”

“그럼 2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도 당연히 준비돼 있다.

“그 후에는 평화로운 영면에 드시는 거죠. 아무 고통없이요.”

고통이 없다는 게 포인트다. 실제 죽는 것과 포에버월드에서 영면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고통의 차이다. 수퍼컴퓨터의 데이터 필드에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고객의 데이터를 삭제하는 과정이, 역시 데이터에 불과한 포에버월드 거주자에게 고통을 줄 리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면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그에 대해 말해 줄 사람은 이미 죽었으므로 경험했어도 말해줄 수 없다. 다시 말해 영면과정에서 어떤 고통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앞으로도 그렇다.

“그럼 2년 동안 뭘 하는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 엄마가 포에버월드에 가면 어떤 생활을 해요?”

질문은 대부분 보호자가 한다. 왜 당사자가 묻지 않고 보호자가 묻는지는 잘 모르지만, 모든 비용을 충당할 사람이 보호자이기 때문 아닐까?

“우선 친구분들을 사귀어야죠. 어머님처럼 포에버월드에 살게 된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음식점도 가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뭐든 할 수 있어요.”

“난 다리 아파서 많이 못 다니는데.”

드디어 죽음을 앞둔 노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틈을 상담사는 놓치지 않는다. 

“아무 걱정 마세요. 포에버월드에서는 다시 예전처럼 걸을 수 있어요. 아무리 걸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원하시면 수영도 배울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기술적인 질문이 나오면 지현우가 답할 차례다. 

“어머니, 지금 가실 곳은 육체는 여기 놔두고 정신만 가시는 거에요. 우리가 생각은 자유라고 하잖아요. 어머니가 꿈속에서는 걸을 수도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포에버월드에 가시면 전부 할 수 있어요.”

“그럼 지금보다 젊어질 수도 있어?”

가끔이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죽을 때가 되면 젊은 날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하니까.

“죄송하지만 어머니, 젊어지는 건 아직 안됩니다. 시스템적으로 의식전송을 하는 순간의 얼굴과 신체가 자동으로 입력되는 방식이라서 그래요.”

거짓말이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클리닉 공식 규정에 외모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게 돼 있을 뿐이다.  

“그럼 뭐, 더 좋은 것도 없네. 거기 가서도 폭삭 늙은 노인네로 살 바에야 지금이나 뭐가 달라. 그냥 죽는 게 낫지.”

“조금 젊어 보일 수는 있어요. 어머니.”

상담사가 나선다. 미용 세일즈를 하려는 것이다.

“좀 전에는 안 된다면서?”

“완전히 나이를 젊게 만들어 드릴 수는 없지만 가상 성형수술을 통해서 아무 고통없이 순식간에 몇 년은 확 젊어 보이게 해 드릴 수 있어요.”

노인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러나 지현우는 알고 있다. 노인은 곧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추가비용이 좀 들어요. 초기값을 버리고 소프트웨어 수정이 필요해서요.”

“얼마나요?”

비용을 묻는 건 보호자의 몫이다. 벌써 걱정이 커진다. 추가선택 없이 기본 옵션만 해도 2년 계약에 3억 원은 각오해야 한다. 아마 보호자는 생애 마지막 효도를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목돈을 마련했을 것이다. 

“1천만 원 정도 들어요. 세금은 별도구요.”

“그렇게나 많이?”

“비용이 부담되시면 좀 저렴한 상품도 있어요. 5백만 원이면 눈주름하고 목주름 같은 것을 없앨 수 있구요... 그 밖에도..”

“됐다. 다 늙어서 내가 잠시 노망났나 보다. 5백이라니. 살아서도 못해본 성형수술을 죽어서 받는다는 게 말이 되니. 됐다. 이제 돌아가자. 더 들을 것도 없어.”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보호자인 중년 여자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안타깝게도 비용문제에서 지현우가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둘은 돌아가면서 상담사가 건네준 팸플릿을 챙겨갔다. 팸플릿에는 각종 비용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기본 옵션은 계약기간 2년에 3억 원짜리 패키지다. 이 옵션에는 혼자 사는 노인에게 19평짜리 아파트가 주어지고 추가비용없이 계약기간 내내 식사가 제공된다. 옷은 계절별로 골라 입을 수 있게 12벌이 있고, 다른 옷을 구입하려면 F머니로 (F머니: Foeverworld money, 포에버월드 내에서 쓰이는 가상화폐)  쇼핑몰에서 구입하거나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참고로 겉에 보이지 않는 속옷은 1년 내내 한 벌이다. 더러워지지 않고 세탁도 필요없다. 

기본 옵션에서 포에버월드 거주자가 활동할 수 있는 맵의 크기는 현재 서울 여의도 정도 크기로 그 안에는 영화관이 있는 복합쇼핑몰과 공원, 체육시설, 산책로 등이 있다. 1년에 국내여행 두 번과 해외여행 1회가 무료 제공되고 여행을 떠나면 현재 거주 중인 맵을 벗어나 여행지의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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