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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18. 2024

4. 죽어도 살아줘. 부탁이야.

현우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호의 병실까지 가는 길에 얼굴이 익숙한 의사 몇몇과 인사했다. 현우는 의사들과 스쳐 지나가면서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환자를 치료할  능력과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질병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자신들은 영원히 아프지 않을 것처럼 환자를 대하고 약을 처방한다. 


의사가 될래? 환자가 될래? 답이 뻔한 질문이다. 환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그들도 아플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지호의 병실 문을 열면서 현우는 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지호는 그곳에 없었다. 


“여기 있던 사람은 어디 갔나요? 윤지호라고..”


지호가 누웠던 침상을 보니 잠시 외출한 모양새가 아니다. 이불은 개어져있고 완전히 비워졌다. 현우는 소름이 돋으며 머리가 어질했다. ‘설마 벌써? 아니겠지?’


현우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환자였으니까, 남의 신상에 관심을 둘 만큼 여유있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현우는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병동 데스크로 달려갔다. 


“윤지호씨는 2시간 전쯤에 퇴원했습니다. 연락 못 받으셨어요?”


퇴원이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퇴원은 곧 치료포기를 의미한다. 휴대폰 연락은 되지 않고 메시지는 읽지 않는다. 현우는 지호의 집으로 향했다. 지호의 집에 도착해서도 꽤 오래 기다려 지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산책이라도 다녀온 행색이었다.


“나보다 더 팔자가 좋네?”


계단층에 앉아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지호를 보고 말했다. 그녀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미안, 많이 놀랬지?”

“그래, 놀랬다. 그러게 왜 사람을 놀래켜? 퇴원할 거면 말이라도 해주지. 사람을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또 기다리게 하고. 갑질 좀 그만하셔. 윤지호씨.”


“들어가자. 저녁은?”

“안 먹어도 돼.”


지호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지는 오래됐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모래를 씹은 것처럼 까끌해서 삼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그녀 앞에서 혼자만 밥 먹는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싫다. 


“집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먹어도 돼. 이쪽에 앉자. 얼굴 창백해 보여.”


LED등 아래 보이는 지호의 얼굴은 더 하얗다. 천국이 백색이라면 그녀는 이미 천국에 도달한 것 같다. 


“현우야, 웃으려고 애쓸 거 없어. 슬픈 거 알아.”

“아닌데? 나 안 슬픈데?”


그러나 ‘안 슬프다’ 말하고 나니 진짜 슬픔이 몰려온다. 


“진짜야. 방금 전까지는 안 슬펐는데 지금은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슬픈 건 슬픈 거잖아. 그냥 니가 슬퍼해도 난 괜찮아.”


곧 죽게 될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 옆에서 걱정하는 사람도 괜찮아야 한다는 것인가? 현우는 화가 났다.


“넌 전부 괜찮잖아? 너만 괜찮으면 다야? 난 안 괜찮아. 사실은 너도 안 괜찮잖아. 그런데 왜 마음대로 퇴원했어? 돈 때문에 그래?”


윤지호는 지현우가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슬프게 보면서.


“산 사람 살아야 한다는 말, 그거 맞는 거 같더라. 안 되는 거 알면서 니가 계속 돈 쓰게 놔둘 수는 없었어. 병원도 의사도 포기한 병이잖아.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은 당연히 모르고, 그런데 병원에 있을 이유는 없는 거잖아. 나 싫더라. 병원에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


“누가 죽는다고 그래? 죽어야 죽는 거야. 내가 너보다 빨리 죽을 수도 있어. 교통사고 날 수도 있고, 돌연사도 많고.”


“그만! 나 진짜 괜찮아. 위로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냥 이제 받아들일래.”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은 받아들이면 그걸로 끝이다. 


“안돼!”

“뭐?”


“너 죽으면 안 돼.”

“무슨 소리야?”


“나도 이 정도 말할 권리는 있어. 넌 받아들일지 몰라도 지금 난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러니까 넌 죽을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아.”


지호는 현우를 이해할 수 없어 보기만 했다. 자신의 죽음을 무슨 수로 막겠다는 것일까?


“나 때문에 화난 거 알지만, 알아듣게 얘기해. 나 머리 아파.”


현우는 자신의 계획을 얘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포에버월드, 들어봤지?”


지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현우를 봤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싫어.”

“싫어? 그게 다야?”


지호는 일어섰다. 타협은 불가능하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현우도 일어섰다. 닫힌 방문을 향해 말했다.


“한번만 더 생각해봐. 부탁이야.”


5.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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