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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11. 2024

2. 살아서 가는 천국, 포에버월드

포에버월드는 현실과 똑같지 않다. 추울 때 춥고 배고플 때 배가 고프지만 실제 경험했던 현실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 같은 차이는 처음 포에버월드에 도착했을 때 가장 심하게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거주기간이 늘어나면서 적응하게 된다. 스스로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날씨는 일기예보에 따라 정확히 변한다. 현실세계에서 일기예보 적중률은 잘해봐야 80% 후반이지만, 포에버월드는 100%다. 시간대별 예보도 정확해서 오후 2시부터 3시 사이에 비가 10mm 온다고 하면, 0.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온다. 바로 그런 점이 현실세계와 다른점이다. 

거주민이 느낄 수 있는 감각도 제한돼 있다. 피부가 느끼는 미세한 감각이나 후각, 미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이 이질적이다. 꼭 내가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대신 느끼는 것 같다. 편리한 점은 센서티브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 감각 역시 시간과 함께 무뎌지고 적응되기 마련이지만, 예민한 사람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한다. 


박장우는 포에버월드에서도 갑이다. 계약기간 무제한, 원할 때까지 이곳에 있다가 영면에 들어가면 된다. 최상위 클래스의 옵션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맵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파리로 베니스로 해외여행 할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네트워크로 연결된 포에버월드의 크기가 아무리 크다 해도 실제 세계에 비할 수는 없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맵이 만들어지지 않은 지역은 갈 수 없는 것이다.

박장우는 꽤 많은 재산을 아들에게 상속하고 죽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고 의식전송을 시행했다. 스위스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는 포에버월드에 사는 박장우 본인만 알고 있다. 때문에 보호자인 아들 박민혁은 죽은 박장우에게 여지껏 꼼짝 못한다. 


지현우의 오늘 주요 일정 중 하나가 포에버월드의 박장우와 아들 박민혁을 아웃라인 화상통화로 연결 시켜주는 일이다. 통화는 오직 모털 컴퍼니의 클리닉에서만 가능하다. 

“아버지, 그동안 별일 없으셨어요? 지내시는 집, 업그레이드해 드렸는데. 이제 겨울철에도 시원하게 수영할 수 있으시죠? 저번에 더운물이 온천물 같다고 싫어 하셨잖아요?”

=그게 언제 일인데 이제 말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면회 신청했는데 왜 빨리 안 받아?

화상으로 보이는 박장우의 얼굴은 실사로 구현된 컴퓨터 그래픽 같다. 언뜻 보면 비슷해도 자세히 보면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괴팍한 노인네의 화난 표정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박민혁은 쩔쩔맨다. 죽은 아버지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 역시 돈의 힘이다. 여차하면 스위스 은행의 돈을 못 물려받으니까.

“제가 바빠서 그랬죠. 불편한 점은 콜센터에 바로 연락하시면 되지 않아요? 여기 지사장이 아버지 요청은 24시간 바로바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혹시 다른 문제 있어요?”

=니가 여기 콜센터에 전화해 봤어? 그놈들은 사람이 아니야. 인공지능이야. 했던 말 또 하고,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만 수십 번씩 반복하면서 맨날 도도리표야. 내가 사람하고 통화하겠다 했지, 누가 ARS 연결해 달라고 했어?

웃기는 일이다. 박장우도 코어 뉴런(core neuron)이 이식된 ST칩만 제외하면 인공지능과 거의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대화는 산 사람하고만 하겠다니..

“정말요? 이것들이 정말. 제가 확실히 말할게요. 아버지 콜담당은 꼭 진짜 사람으로 해달라고. 그럼 그것뿐이에요?”

박민혁은 어떻게든 빨리 연결을 끊고 돌아가고 싶지만 얼굴에 불만을 나타낼 수는 없다. 쌍방 화상연결이라 박장우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내가 죽었다고 무시하는 거지? 지금 통화연결한지 몇 분이나 됐다고 벌써 도망가려 해? 이 돈도 전부 내가 내는 건데 통화비 아까워서 그러는 것도 아닐 것이고.

포에버월드 거주민이 현실세계의 사람과 통화하면 엄청난 요금이 청구된다. 일반 고객들은 1년에 한번 생일이나 가능한 일이다. 생일에는 50% 할인 쿠폰이 제공되니까. 

“도망이라니요. 누가요? 제가 아버지 원할 때까지 여기 딱 있을게요. 뭐든 말만 다 하세요.”

=그래? 그럼 나 얼굴 바꿔줘!

“네? 아버지 얼굴을 바꾸다니요? 어떻게요? 가상 성형수술 해달라는 말씀이세요?”

=아니, 성형말고, 아예 젊게 바꿔줘. 니놈 만큼 젊게. 포에버월드에서는 뭐든지 휙휙 바꿀 수 있다면서? 그러면 내가 이렇게 쭈글쭈글하게 살 필요 없는 거잖아. 재미도 없는데 몸이라도 젊어져야지. 이건 뭐 불편해서 못 살겠다. 돈 많으면 뭐해? 어디가도 노인 취급인데.

포에버월드의 특성상 거주민 대다수가 노인이지만 죽기 직전 연령에 따라 상대적으로 젊은 거주민들도 제법 있다. 이들은 젊어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포에버월드 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은 거주민의 호감을 얻기 위해 돈 많고 늙은 거주민들이 사이버 선물을 하거나, 포에버월드에서만 통용되는 F머니를 주기도 한다. 

“그런 말은 어디에서 들으셨어요? 젊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던데요.”

=어디서 구라질이야? 그럼 내가 안 되는 걸 된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거야? 

박민혁은 처음 듣는 말이다. 외형을 젊게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것은 모털 컴퍼니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알아볼게요. 가능하다면야 당연히 해드리죠. 내가 뭐가 아깝겠어요?”

=다음 주까지 확실히 알아보고 다시 연락해. 아니면 나 여기서 그냥 콱 죽어버리는 수가 있어.

박장우의 특기가 또 나왔다. 스위스 은행 계좌도 가르쳐주지 않고 죽겠다는 협박. 매번 하는 소리지만 매번 먹힌다. 

“에이, 그런 말씀 마시고.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저만 기다리지 말고 어디 여행 좀 더 다녀오세요. 제가 F머니 상한까지 채워놓을게요.”

=흥, 가나마나한 그딴 여행. 내가 살아서 에펠탑을 못 봤으면 몰라도, 여기 에펠탑은 미니 사이즈야. 누굴 속이려고 말이야. 베니스는 코딱지 만해 가지고 반나절만 돌아다녀도 더이상 맵이 없다는 메시지나 나오고. 됐다. 그냥 영화나 보는 게 낫지.

박장우 정도면 살아있는 동안 유명한 여행지는 거의 다녀왔을 것이다. 포에버월드의 여행지는 실제로 본 사람들에게는 미니어쳐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처음 해외를 가본 사람에게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다.

“올해 말에 또 업데이트한다고 하니까 아마 못 가보신 곳도 많이 나올 거에요.”

연결이 끊겼다. 박장우가 아들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먼저 끊어버린 것이다. 

박민혁은 마지막 화면으로 정지된 박장우의 얼굴을 보며 신경질을 냈다.

“정신 나간 노인네. 자기가 아직도 살아있는 줄 알아. 콜센터에 산 사람이 왜 필요해? 죽었으면 곱게 죽을 것이지. 진짜 스위스은행만 아니면 내가 벌써 ST칩 뽑았다.”

그러다 통화를 연결해준 지현우가 옆에서 듣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실실 웃었다.

“농담이야. 현우씨. 이해하지? 나 그냥 하는 소리야.” 

현우가 혹시라도 몰래 박장우와 연결해 사실대로 말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규정상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완벽하게 비밀로 보장합니다.”

“알지. 내가 몰라서 묻는 게 아니고. 노인네가 너무 심하니까. 그리고 이거.”

박민혁이 팁이라며 지현우에게 현금을 쥐어준다. 지현우는 공손하게 받아 넣었다. 

“매번 감사합니다. 그럼 일주일 후에 통화예약해 드릴까요?”

“일단 예약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박민혁은 대충 알아서 하라는 사인을 주고 아웃라인 면회실을 나갔다. 나가자마자 포에버월드 쪽에서 통화연결 요청 신호가 울린다. 박장우다. 

“선생님, 벌써 전화하면 어쩝니까? 아드님 지금 막 나갔습니다.”

=여태 내 욕하다가 나갔지?

“아뇨. 오늘은 별말 안 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지금쯤 내가 여기 살아 있는 게 못마땅해 죽을 거야. 그건 그렇고, 민혁이놈은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여기서 젊어지는 게 가능해?

“가능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거주자 중에는 없지만, 미국하고 프랑스에는 외모를 젊게 바꾼 거주자들이 몇 있습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긴 해요. 다른 거주자들은 새로 입주한 젊은 거주자로 아는 것이구요.”

=돈 많이 들겠네?

“네 음성적인 서비스라 돈이 꽤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아드님은 싫어하겠지만.”

=큭큭큭, 좋은 정보 고마워. 내가 사례는 충분히 할게.

“뭘요. 하지만 선생님. 다른 사람은 절대 알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당연하지. 내가 말할 데가 어디 있어? 염려 붙들어 매. 그럼 또 내가 연락하면 잘 받기나 해. 

현우는 박장우에게 ‘젊어지는’ 비밀을 알려준 대가로 꽤 많은 F머니를 받기로 했다. 현실 세계에 사는 현우에게 F머니는 무용지물이지만 그 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다. 

여자친구 윤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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