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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16. 2024

3. 사후세계에도 인권이 있는가?

‘포에버월드’ 규제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공청회의 주요 토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한영 : 행정안전부 장관

주인호 : 모털 컴퍼니 한국 지사장

유원재 : 한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성애란 : 참시민 연합회 사무처장


지현우는 토론자는 아니었지만 모털 컴퍼니 한국지사 기술팀장으로서 소울 트랜스퍼링 시스템과 관련한 토론자들의 질의에 대답할 목적으로 패널 마지막에 앉아있었다.


새 법안의 목적은 모털 컴퍼니 한국 지사에 정부에서 파견한 감독관이 상주하고 정기적인 국정 감사를 받게 하는 것이다. 


김한영 장관 : 정부의 규제목적은 단순합니다. 모털 컴퍼니는 의식전송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사실상 망자의 사후세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전기통신 공급업체도 국민복지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고 해서 정부의 규제를 받는데 어떻게 사후세계를 판매하는 업체가 아무런 규제도 없이 영업을 한다는 말입니까? 


주인호 지사장 : 장관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장관님은 포에버월드를 자꾸 사후세계라고 하시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 국내에서는 하루에 죽는 사람 중에서 겨우 2%만이 의식전송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무조건 가는 게 아니라 선택인데 그걸 사후세계라고 말씀하시는 건 너무 심한데요.


유원재 교수 : 저는 이런 자리에서 사후세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자체가 참 불편합니다. 사후세계라면 곧 저승이라는 건데, 저승이 있다는 겁니까? 그런 건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모털 컴퍼니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사후세계라기 보다는 가상의 세계로 봐야 하는데,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포에버월드의 거주민이 진짜 사람의 영혼이냐는 것입니다. 


김한영 장관 : 그럼 교수님 말씀은 포에버월드 거주민이 진짜 사람의 영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유원재 교수 : 정부도 의식전송을 시술하고 나면 피시술자는 바로 사망처리하지 않습니까? 


김한영 장관 : 그야 피시술자는 의학적으로 사망했으니까요. 


유원재 교수 : 바로 그겁니다. 사망한 사람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모털 컴퍼니는 그 점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영혼이라면서 돈은 받고, 법적 보호장치가 없으니 규제는 받지 않겠다는 거지요.


성애란 처장 : 저도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포에버월드의 거주민은 사실상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도 현실세계보다 몇 배는 크고, 의식전송으로 죽음을 연장하려했던 시민들이 죽음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제보도 있습니다. 


주인호 지사장 : 너무 말씀이 심하신데요? 포에버월드 거주민들은 아무리 못해도 현실세계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기 계약서에 보면 기본옵션만 선택해도 의식주는 계약기간 내내 무료로 제공 받고 여행도 할 수 있습니다.


성애란 처장 : 사람이 어떻게 먹고 자는 것만으로 잘 살 수 있나요? 게다가 계약기간이 끝나고 연장할 돈이 없으면 바로 칩을 뽑는 거 아닙니까? 정말 비인간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정부의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한영 장관 : 제 말도 그 말입니다. 일단 정부 규제 안으로 들어와야 포에버월드 거주민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번 법안은 그러한 길로 가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주인호 지사장 : 지금 두 분 말씀은 우리 모털 컴퍼니가 대단한 비리가 있어서 포에버월드 안에서 큰 잘못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 같은데 아무 증거도 없이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공정한 법안 심사를 위해 먼저 참관단이 포에버월드를 경험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유원재 교수 : 포에버월드 경험이라고 했나요? 그게 가능합니까? 


모두의 시선이 지현우에게 쏠렸다. 기술적 문제는 지현우가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 체험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포에버월드에 들어갈 수 없으니 VR장비를 착용하고 접속해서 관찰만 할 수 있습니다. 거주민과 접촉은 불가능하고, 포에버월드의 음식을 맛본다든가 옷을 입어 보는 것 같이 구체적인 체험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포에버월드가 어떤 곳인지는 충분히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포에버월드를 사실상 저승으로 알고 있다. 


저승에 가지는 못해도 저승을 체험할 수는 있다니, 실로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다. 방청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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