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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18. 2019

나도 신들린 듯 잘하고 싶다

프리스타일 랩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해진 시간 동안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정신없이 쏟아낸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랩을 할 수 있지?’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내는 것도 모자라 라임까지 딱딱 맞춘다. 그러면서도 관객의 흥분을 최고조로 이끌 수 있다면 묘기 정도가 아니라 ‘신기’에 가깝다. 

듣는 나도 알아듣기 힘든 속도인데 그 속도보다 빠르게 가사를 지어내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물론 여러 설명이 가능하다. 늘 쓰던 말, 늘 하고 싶던 말들을 쌓아놨다가 기억의 창고에서 빠르게 끄집어낸다는 것. 하지만 그 보다 명쾌한 설명이 있다. 


우리는 그런 랩퍼를 보면서 ‘신들린 듯’ 잘한다고 말하는데 진짜 신이 들어왔다고 하면 어떤가? 음악의 신 뮤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들린 듯’이라는 말을 하게 된 건 아닐까?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그리스인들은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시를 짓거나 멋진 노래를 부를 때, 혹은 연극 연기를 할 때 진짜 신이 영혼 속에 들어온다고 믿었다. 전혀 없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자기가 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멋진 시를 지었다면 그건 당연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신의 도움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만약 스스로 모든 것을 해냈다고 믿는다면 ‘오만’이며 올림푸스의 신들은 오만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는 일이 없었다. 

오만해서 망한 대표적인 인간이 시시포스, 자신의 영악함으로 신도 속일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는 매번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뿐더러 그리스인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을 금기시했는데, 이유는 마음의 소리가 자신의 속마음인지 신들이 ‘이리하라’ ‘저리하라’ 속삭이는 신의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책을 읽을 때 속으로 읽지 않고 항상 소리 내어 읽었다. 


여러 예술가들이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고 이렇게 말한다.

“신이여, 정녕 이게 제가 한 일입니까?”

자기 작품이 뛰어나다는 오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꽉 막혔던 소설의 다음 장이 술술 써지거나, 기막힌 즉흥곡을 연주할 때, 게다가 그 결과가 꼭 맘에 들 때, 무에서 유가 어떻게 창조되며 절로 신(神)이 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플라톤은 예술은 모방이며 진정한 작품은 신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라 말했다. 모방이라는 말이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지만 신을 모방한 것인데 뭐 어때? 신이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적잖은 부작용을 야기한다. 나쁜 일도 신의 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나쁜 짓 저지르고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나쁜 놈들이다. 

남의 블로그를 베껴서 자기 블로그에 자기 글인양 모아놓고 구독자를 늘리거나, 인터넷에서 참고한 남의 아이디어로 강의자료를 만들어 돈벌이를 하는 자들, 이들도 신이 말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창의적으로 ‘신이 자기에게도 똑같은 영감을 줬다.’ ‘그 신(神)과 이 신(神)이 같은 신(神)이다.’ ‘신의 아이디어이니 니 걸 훔친 건 아니다.’ 고 변명할 수 있다. 


하긴 신이 있다면 다 좋은 신만 있겠는가? 표절을 권유하는 나쁜 신도 있을 수 있다. 그럼 이제 어째야 하나?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고 하고, 잘해도 내탓, 못해도 내탓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신은 좋은 신만이 신이라 할 수 있으니 잘한 건 신의 도움, 못한 건 내 잘못이라 해야 하나?


다행인 건 그 선택이 자유라는 것이다. 신의 영적인 도움을 받아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신에게 감사하거나, 나쁜 일을 하고 나쁜 신에게 잘못을 전가하거나.. 

맘대로 하라.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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