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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17. 2019

나는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게 아니다

눈부시게 하얀 피부, 환한 미소, 중저음의 반전 목소리, 웃을 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귀여움. 배우 정해인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신문기사를 보면 배우 손예진은 그의 매력에 대해 “뭔가 보호해주고 싶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도 있지만, 너무 설레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고, 김고은은 “쉽게 볼 수 없는 천만 불짜리 미소”라고 답했다. 


하지만 동료 여배우들의 답변을 잘 살펴보면 간과할 수 없는 배경이 있다. 손예진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보여줬던 정해인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고, 김고은 역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극중 주인공 ‘미수’의 시선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그녀들이 정해인에 대해 느꼈을 감정이나 매력은 내버려두자.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실생활에서 정해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목소리로 말할지, 어떤 성격일지도 알려고 하지 말자. 그런데 그럴 수 있나? 


그렇지 않다. 배우든 가수든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면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게 당연하다. 무대에 있지 않을 때, 연기를 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친구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발 더 나아가 집은 어떻게 꾸몄는지, 요리는 직접 하는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 심지어는 잠잘 때 어떤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지까지 모든 게 궁금하고 관심이 된다.

그래서 리얼 다큐 형식의 예능이 대세다.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고, 관찰 카메라를 달고, 삼삼오오 캠핑을 가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찍고, 고기에 상추쌈을 어떻게 싸먹는지를 보며 눈을 반짝인다. 


나쁘지 않다. 연예인은 사생활을 공개함으로써 인기를 유지하고, 시청자는 그것을 보며 힐링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TV에 공개한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정말 실제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막연히 짐작 한다. “설마 저게 다 진짜겠어?”


TV에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가식적인 모습이 좀 들어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어떤 면에서 그런 인위적인 요소가 시청자에 대한 예의이며 성의가 된다. 

게다가 ‘우리는 살면서 조금의 가식도 떨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살다보면 어느 게 진심이고 가식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연기’가 좀 포함됐다고 해서 뭐가 나쁜가?


연예인이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와,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사실적’ 이미지가 합쳐져 스타의 이미지가 되며, 이 이미지는 수많은 미디어를 거치고, 입소문을 타며 더 부풀려지고 왜곡된다. 

여기에 그 이미지를 수용하는 팬들의 상상이 더해지면, 그것은 망상이 되고, 망상은 인터넷을 타고 끝없이 복제된다. 복제의 복제가 넘쳐나고, 대중의 망상이 더해지면 원 인격권자인 연예인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때문에 유명인일수록 책임져야 할 이미지는 터무니없이 많아진다. 자신이 보여주려고 한 이미지가 아니고, 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일지라도 책임은 본인에게 돌아간다. 어떤 팬들은 자신이 오해했거나 만들어낸 환상이 깨진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한다. 애초에 그 연예인에게 속하지 않았던 특성이나 부분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긋난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어쩜 걔가 그럴 수 있니? 완전 배신 아니니?”


우리가 사람을 좋아할 때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걸까? 보여주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과 망상을 좋아하는 걸까?

상대가 미디어 속 연예인에 제한될 경우 망상을 좋아하는 것이라도 괜찮다. 어떤 연예인도 이렇게 말하지 않으니까. “누가 니 맘대로 오해하래? 어따 대고 나한테 책임지래?”


하지만 좋아하는 상대가 주변 사람이라면 어떤가? 가족이나 동료, 친구의 망상을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최소한 연인관계라면 한번 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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