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게 싫으면 난 안 가도 되는데."
"안 가도 된다고?"
"응."
시영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하에게 다시 물었다.
"누가?"
"누구긴, 회사 가기 싫은 사람이지."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하루만 더, 오늘 말고 내일, 차일피일 미루는 건 가기 싫은 것 아닌가?"
자하의 목소리 톤은 평소와 똑같았다. 시영을 비난하는 것도 칭찬하는 것도 아닌.
"싫은 건 맞지만 약속했으니까 지킬 거야. 걱정마."
"걱정 안 하는데. 난."
"왜 걱정 안 하는데?"
"걱정 해야 하나? 왜?"
시영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화를 계속하면 싸우게 될 것이다. 어디서 물러나야 할지 고민이다.
"내가 회사를 안 나가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장인어른이 안 좋아하시겠지. 아니야?"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 아빠 일이고, 난 상관없는데."
"왜 상관없어?"
"상관없으니까."
싸우자는 게 아니었다. 자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너네 회사는 투자 약속을 지켰잖아."
"그랬지."
"그런데도 내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앞으로 너네 회사가 경영권 분쟁이 있을 때 나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고, 우리 결혼이 아무 의미 없는데도."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해?"
"그런 말이 아니라."
"나는 자기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정말?"
"내가 거짓말 하는 것 봤어? 거짓말 하려면 길게 말해야 하는데 긴 건 딱 질색이야. 우리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알지 않나?"
"그래도..."
"난 먼저 출근할게. 난 회사 가는게 좋으니까. 누구와 달리. 화이팅."
"화이팅? 뭘 화이팅 하는데?"
"그건.. 아마도.. 모르겠어."
"쉽게 생각해봐. 화이팅은 일반적으로 잘해보라는 것이잖아. 네가 그 시점에서 잘할 게 뭐 있어?"
"회사 안 가는 거?"
"그거지. 그러니까 네 엑스는 너의 출근거부 투쟁을 지지한다는 거였어. 맞지?"
"그런 것 같애. 그런데 왜 그랬지?"
"그게 뭐 문제인데?"
"내가 출근을 해야 와이프한테 이득인데 그걸 포기하는 거니까."
"더 큰 이득이 있나보지."
"그게 뭔데? 뭐가 있는데?"
"나야 모르지. 넌 말이야. 문제가 진짜 많지만 자꾸 자기 문제를 남한테 전가하는 경향이 있어. 네 엑스 문제를 왜 나한테 물어?"
"물어볼까?"
"이제 와서 그걸 묻는다고? 어이 없군. 넌 이제 그만 마셔라. 슬슬 헛소리하는게 취했어."
둘이서 마신 위스키 보틀이 반절 이상 비었다. 시간도 꽤 흘렀다. 바텐더가 보이지 않은지는 꽤 됐다. 홀에 손님도 둘 뿐이었다.
"그만 갈까?"
"그래야지. 난 택시 타면 되고 넌 대리 부르나?"
"아마도. 택시 타도 되고."
"하긴 이 앞에 좀 주차해 둔다고 뭐라 하지는 않겠다."
영호가 일어섰다. 시영은 일어나려다 엉거주춤 다시 앉았다.
"먼저 가. 난 좀 쉬었다 갈게."
"많이 취했어? 그럼 대리 불러."
"새벽이라 오래 걸릴 거야. 그냥 가."
"여태 얻어 먹고 그럴 수야 없지. 그래도 건물주님인데. 대리 불러. 올 때까지만 있다 갈게."
"피곤하지 않겠어?"
"내가 뭐 출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