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해."
"동감."
꽤 많은 용기를 쥐어짜서 한 고백이었는데 와이프의 대답은 지나치게 간단했다.
"네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응."
"언제?"
"와이프 퇴근할 때."
"좀더 구체적으로.. 퇴근이야 매일 하는 거 아니야. 합방하고 첫 퇴근 때겠지?"
"방은 한번도 같이 안 썼는데?"
"등신아. 그거 말고..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집에 살았잖아."
"아, 대충 그랬던 것 같아. 와이프가 퇴근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여서 뭔가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말이 생각났어."
"잘했어. 너로서는 최선이라고 봐. 그런데 겨우 '동감' 이라고 밖에 말 안해? 여튼 네 엑스도 진짜 대단해. 그래도 네 얼굴을 따뜻하게 쳐다본다든가.. 감동한 표정을 짓는다든가.. 뭐 없었어?"
"어깨를 손으로 툭 쳤어."
"그리고?"
"그게 다인데."
"손으로 친 게 다라고? 그게 뭐야? 잘해 보라는 거잖아."
"그게 그런 뜻이야?"
"당연하지. 수고해. (어깨를 툭 친다) 이렇게."
"그런 뜻이었구나. 잘해 보라고. 그랬는데 내가 망친 거야."
"뭘 또 니가 망치지?"
"전부 다."
"알지. 알지. 망치는 게 네 전문이니까. 핵심은 그 중에서 뭘 망쳤냐는 거야?"
"아무것도 안한 거."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래. 좋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고는 정작 아무 일도 안했으니까. 출근도 하지 않았고 남편으로서 해야 할 아무 일도 안 했어."
영호가 잠깐 생각에 빠졌다.
"내가 결혼을 안 해봐서 그런데 남편으로 해야 할 일이 뭐지?"
시영도 당황했다. 머리 속이 하얘졌다.
"실은 나도 몰라. 책에도 없고."
"심각하네. 남편으로 해야 할 일도 모르는 두 남자가 앉아서 뭘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있다는게.."
"그렇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좋은 점도 있다. 모르니까 안 한 거잖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책에도 없다며."
"그런가?"
"네 잘못이 아니야. 야, 말하고 보니까 너무 상투적이다. 네 잘못이 아니라니. 정치인 같잖아."
"맞아. 핵심을 빗겨난 거지. 중요한 건 내가 망쳤다는 거야.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대게는 잘못해서 망치지만 때로는 잘해도 망칠 때도 있고."
"스톱.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지금 철학 강의하냐? 그딴 건 학술대회에서나 하고 지금은 사태 해결을 해야지."
"엄밀히 해결은 아니지. 이미 다 지난 일이니까."
"그것도 그렇네. 같은 의미에서 후회해 봐야 다 늦었고. 그러니까 니가 망쳤다는 등 해서 스스로 괴롭히지마. 사람 관계라는게 어디 한 사람이 잘못해서 끝나냐? 요즘은 자동차 사고도 10 대 빵은 없대. 항상 쌍방이야. 문제는 어느 쪽 책임이 크냐인데, 결론은 늘 정해져 있어."
"어떻게?"
"2 대 8이냐? 8 대 2냐? 이거지. 5 대 5는 아무 의미 없으니까."
"그러면 내 잘못이 8이라는 거구나."
"그야 모르지. 그건 니 생각일 뿐이고. 내 생각에는 니가 2, 니 엑스가 8 같아. 너는 그래도 좀 좋아했으니까. 니 엑스는 네 조건만 보고 결혼한 것이고."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이 속을 드러내지 않기는 하지만 나한테 섭섭하게 한 적은 없고. 내 책을 대량 구매한 것만 봐도 그렇고."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 봐. 네 책을 대량 산 건 자기 자존심 때문이겠지. 명색이 자기 남편이 책을 출판했는데 아무도 안 사면 자기도 쪽팔리잖아. 자랑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증거 있어?"
"그러니까 내가 회사에 도저히 출근하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뭐래? 출근 안 하면 당장 이혼이라고 협박했어?"
"아니."
"그럼 뭐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