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수가 예쁘다고 했지?"
"아니."
"객관적으로 묻는 게 아니라, 야, 객관적으로 다 예쁘면 그게 연예인이지 일반인이냐? 적어도 네 눈에는 예쁠 거 아니야."
"예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익숙해."
"익숙? 그게 여자한테 할 소리냐? 설마 그분에게 똑같이 말한 건 아니겠지?"
"글쎄. 했나? 기억이 안나."
"기억이 안나? 거짓말도 좀 성의있게 해라. 전부 다 기억하는 놈이 유독 그것만 기억이 안나? 했구나. 했지?"
"그런 것 같기도."
"망했다. 망했어. 그냥 그분은 포기해라."
"왜?"
"묻지마. 넌 설명해도 몰라. 포기해."
"안 그래도 그럴까 해."
"뭐야? 아까하고 얘기가 다르잖아. 아까는 그 여교수한테 강의까지 양보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이제와서 포기하겠다고?"
"포기하라면서?"
"그건 그냥. 진짜 답답하네. 그 여자가 좋기는 해?"
"그런 것 같아."
"왜?"
"모르겠어. 좋은 게 이유가 있는 것도.."
"스톱! 좋은데 이유가 어디 있냐는 소리는 하지마! 아까도 했거든. 나도 알아. 또 안 말해도 된다고. 그래도 모든 사람이 좋은 건 아니잖아. 특별하게 그 여자가 좋다는 건 어떤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고. 그게 뭐냐는 거지. 이해했지?"
"다른 점. 다른 점은 모르겠고, 와이프와 비슷하기는 한데."
"뭐? 누구랑 비슷하다고?"
"그냥 같이 있으면 와이프를 닮은 것 같아서... 느낌이 좋아."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지금 너 그 여교수가 와이프 닮아서 좋다는 거잖아."
"내가 그랬어?"
"그럼 그게 그 말이 아니야? 와이프를 닮은 것 같아서 느낌이 좋다면서."
"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시영은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호는 그런 시영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뭘 이해를 하고 있어? 너 지금 와이프가 좋으니까 와이프를 닮은 그녀가 좋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내 말 맞지?"
"그래,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그녀가 처음부터 끌렸나봐."
"야, 그럴 거면 그냥 와이프랑 이혼하지 말고 살면 되잖아. 왜 이혼하고 비슷한 여자를 다시 좋아해? 그런 낭비가 어딨어?"
"그럴 수 없으니까. 이미 이혼했잖아."
"신고 안 했다며?"
"그건 형식적인 것이고, 이미 양가에 이혼한다고 다 말했는데."
어이없다는 영호의 표정은 황당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침착해진다.
"하긴, 너네쯤 되면 그걸 되집는 것도 힘들긴 하겠다. 여하튼 부자들은 간단한 일도 참 복잡하게 한다니까. 잠깐만 이혼사유가 뭐라고 했었지?"
"약속을 안 지켜서."
"그래, 니가 결혼하면 회사에 들어가서 경영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출근을 못 했다는 거지. 그거 때문에 와이프가 이혼하자고 했어?"
"내가 말했어."
"니가? 니가 왜?"
"애초에 그게 조건이었으니까. 난 약속을 못 지켰고 이혼해야 할 것 같다고."
"넌 와이프 좋아한다면서?"
"...."
"왜 대답 못해? 좋아하는 거 아니야?"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아서. 갑자기 그렇게 말로 하려니까 뭔가 어색하고."
"이것봐라. 당연히 고백은 안 했을 것이고. 야, 아무리 정략결혼이지만 뭐 형식적으로라도 프로포즈는 했을 거 아니야?"
"아니. 그런 거 없었어."
"잘하는 짓이다. 부자놈들이 보면 낭만이 없어. 한강에 유람선 띄우고 불꽃놀이하고 이런 건 전부 TV에만 있는 거냐? 말해 뭐해. 그래서 너네는 둘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해? 사업 얘기?"
"와이프는 사업얘기, 나는 그냥 인간의 의식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 자주는 아니고."
"완전히 서로 딴소리 한다는 거 아니야? 그런 식으로도 대화가 돼?"
"그냥 가끔 밥 먹을 때 서로 관심사에 대해 말하는 거지."
"네 엑스가 그걸 참고 있고?"
"그런 것 같은데."
"하긴 네 엑스 성격에 듣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든가, 어떤 식으로든 표를 냈겠지. 너는? 사업얘기 질색하잖아."
"나도 들을 만 했어. 그렇게 싫지도 않았고."
"천생연분이네. 그런데도 좋아한다든가, 그 비슷한 말도 서로 안 했어?"
"그런 것 같아."
"한번도? 잘 생각해 봐. 은연중에 암시하는 말을 했을 수도 있잖아."
시영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잊고 있는 것. 생각나지 않는 게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생각. 오류나 오해가 두려워서 아예 되짚어 보지 않았던 이야기. 있는 것 같은데. 뭐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