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조각을 모아도 온전한 내가 아닌 #8

by 시sy

"일단 요트를 사. 그리고 항해를 떠나는 거지. 유튜브 보니까 요트 그거 끝내주더라.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도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반짝이는 물결하며, 뱃머리에 앉아서 샴페인을 마시는 거지. 비키니 입은 미녀가 같이 있으면 더 좋고."

"요트 자격증 없는데."

"따면 되지."

"배 타는 거 싫어하는데."

"배 타는게 왜 싫어? 어릴 때 물에 빠진 경험이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너 심연 본 적 없지?"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심연? 그걸 어떻게 봐?"

"심해 아니고 심연. 어릴 때 스킨스쿠버를 배웠는데 처음 바닷속에 들어갔을 때 파란색 물고기를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가게 됐어. 그러다가 바닷속을 들여다봤는데 생각보다 더 까맣더라구."

"당연한 거 아니야? 깊은 바다는 당연히 안 보이지."

"그때 잠깐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갔나봐. 처음에는 바닷속으로 빛이 조금은 들어와서 무섭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주변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얼른 해수면으로 고개를 쳐들었지. 다행히 그리 깊지는 않아서 금세 올라갈 수 있었어."

"그럼 됐네. 뭐가 걱정인데?"

"수면으로 급하게 올라가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물 속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됐는데.. 뭔가 진짜 이상한 거야."

"뭐가?"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일 수 있을까? 스킨스쿠버 하는 곳이라 그리 깊지도 않을 텐데."

"그게 뭐가 이상해?"

"깜깜한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었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그러더니 실제로 몸이 무거워지면서 몸이 가라앉더라. 그런데도 난 심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모르겠어."

"아 진짜. 뭐가 툭하면 몰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에 있었으니까."

"누가 구해줬구나."

"그랬겠지."

"그래서?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트라우마까지는 아닌데 심연에 빠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X랄한다. 바다에 빠진다고 심연에 빠지냐? 그럼 그 뒤로 한번도 바다에 안 갔어?"

"물에는 안 들어갔어."

"대박이다. 진짜 부자면 뭐하냐? 돈 쓸 떼가 없는데. 알았어. 요트는 포기."

"미안."

"미안할 일은 아니고. 일단은 뭘 할지 보다 하면 안되는 것부터 정하자."

"어떻게?"

"일단 공부, 그거 이제 그만해. 사실 말이 났으니까 말하지만 철학 그거 어디에 쓰냐? 차별화가 안 되잖아."

"차별화?"

"요즘에는 개나 소나 갖다 붙이면 다 철학이래. 책방하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팔면서도 거시기한 철학서 진짜 많아. 다 철학이고, 다 인문학이야. 쓴 사람 보면 견적 나오잖아. 표지만 그럴 싸하고 읽어보면 내용은 별 거 없어. 그런데도 슬픈 게 뭔지 알아? 니가 쓴 책 보다는 잘 팔린다는 거야. 그리고 언제 때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아직도 우려 먹냐? 그냥 네임벨류 팔아서 장사하는 거지. 솔직히 스마트폰 한번 안 써 본 니체나 쇼펜하우어가 우리 인생을 알아? 우리 철학하고 맞냐고?"

"그렇게 말할 건 아닌데,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적용할 수 있는..."

"시끄럽고. 여튼 철학 그거 그만해. 답 없어. 그리고 소설도 그만 써."

"소설도?"

"계속 쓰려고?"

"안 돼?"

"진짜 너 답 없다. 아무도 안 읽어도 좋고, 너만 만족하면 된다고 그랬지? 그래서? 만족해? 진짜 만족하냐고?"

"..."

"봐. 대답 못하지? 너도 은근히 관종이야. 맨날 나 보고 읽어보라고 하잖아. 내가 읽고 멘트해 주면 좋아하고. 너 혼자 읽을 거면 그걸 굳이 왜 써? 너 혼자 상상하면 되지."

"상상도 해. 쓴 거보다 안 쓰고 머릿속에 있는게 더 많아."

"헐. 기어이 쓰겠다는 거지?"

"응. 이건 포기 못해. 포기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오케이. 소설은 넘어가고. 이제 뭘 할까? 그래 연애. 썸타는 여교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그녀하고 사귀어. 역시 인간사는 연애가 최고다. 최고의 마약이고 너한테 꼭 필요한 치료제이기도 하고."

"치료?"

"그래 치료. 넌 니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너한테 피해를 주잖아. 바로 너한테."

"나한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

"그게 가장 큰 문제지. 넌 너를 너무 괴롭혀.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지겹고 한심하고.. 또."

".."

"불쌍해. 넌 너한테 사과해야 해. 너처럼 다 가진 놈이 왜 이렇게 살아. 임마."

"다 가지지 못했나 보지. 아니면 가진게 전부가 아니거나. 난 늘 부족해. 뭔가 빠진 것 같아."

"얼빠진놈. 됐다. 술이나 한잔 더 하고 네 연애 사업 얘기나 하자. 기분 우울해진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내가 훨씬 쪼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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