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요트를 사. 그리고 항해를 떠나는 거지. 유튜브 보니까 요트 그거 끝내주더라.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도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반짝이는 물결하며, 뱃머리에 앉아서 샴페인을 마시는 거지. 비키니 입은 미녀가 같이 있으면 더 좋고."
"요트 자격증 없는데."
"따면 되지."
"배 타는 거 싫어하는데."
"배 타는게 왜 싫어? 어릴 때 물에 빠진 경험이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너 심연 본 적 없지?"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심연? 그걸 어떻게 봐?"
"심해 아니고 심연. 어릴 때 스킨스쿠버를 배웠는데 처음 바닷속에 들어갔을 때 파란색 물고기를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가게 됐어. 그러다가 바닷속을 들여다봤는데 생각보다 더 까맣더라구."
"당연한 거 아니야? 깊은 바다는 당연히 안 보이지."
"그때 잠깐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갔나봐. 처음에는 바닷속으로 빛이 조금은 들어와서 무섭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주변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얼른 해수면으로 고개를 쳐들었지. 다행히 그리 깊지는 않아서 금세 올라갈 수 있었어."
"그럼 됐네. 뭐가 걱정인데?"
"수면으로 급하게 올라가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물 속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됐는데.. 뭔가 진짜 이상한 거야."
"뭐가?"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일 수 있을까? 스킨스쿠버 하는 곳이라 그리 깊지도 않을 텐데."
"그게 뭐가 이상해?"
"깜깜한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었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그러더니 실제로 몸이 무거워지면서 몸이 가라앉더라. 그런데도 난 심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모르겠어."
"아 진짜. 뭐가 툭하면 몰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에 있었으니까."
"누가 구해줬구나."
"그랬겠지."
"그래서?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트라우마까지는 아닌데 심연에 빠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X랄한다. 바다에 빠진다고 심연에 빠지냐? 그럼 그 뒤로 한번도 바다에 안 갔어?"
"물에는 안 들어갔어."
"대박이다. 진짜 부자면 뭐하냐? 돈 쓸 떼가 없는데. 알았어. 요트는 포기."
"미안."
"미안할 일은 아니고. 일단은 뭘 할지 보다 하면 안되는 것부터 정하자."
"어떻게?"
"일단 공부, 그거 이제 그만해. 사실 말이 났으니까 말하지만 철학 그거 어디에 쓰냐? 차별화가 안 되잖아."
"차별화?"
"요즘에는 개나 소나 갖다 붙이면 다 철학이래. 책방하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팔면서도 거시기한 철학서 진짜 많아. 다 철학이고, 다 인문학이야. 쓴 사람 보면 견적 나오잖아. 표지만 그럴 싸하고 읽어보면 내용은 별 거 없어. 그런데도 슬픈 게 뭔지 알아? 니가 쓴 책 보다는 잘 팔린다는 거야. 그리고 언제 때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아직도 우려 먹냐? 그냥 네임벨류 팔아서 장사하는 거지. 솔직히 스마트폰 한번 안 써 본 니체나 쇼펜하우어가 우리 인생을 알아? 우리 철학하고 맞냐고?"
"그렇게 말할 건 아닌데,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적용할 수 있는..."
"시끄럽고. 여튼 철학 그거 그만해. 답 없어. 그리고 소설도 그만 써."
"소설도?"
"계속 쓰려고?"
"안 돼?"
"진짜 너 답 없다. 아무도 안 읽어도 좋고, 너만 만족하면 된다고 그랬지? 그래서? 만족해? 진짜 만족하냐고?"
"..."
"봐. 대답 못하지? 너도 은근히 관종이야. 맨날 나 보고 읽어보라고 하잖아. 내가 읽고 멘트해 주면 좋아하고. 너 혼자 읽을 거면 그걸 굳이 왜 써? 너 혼자 상상하면 되지."
"상상도 해. 쓴 거보다 안 쓰고 머릿속에 있는게 더 많아."
"헐. 기어이 쓰겠다는 거지?"
"응. 이건 포기 못해. 포기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오케이. 소설은 넘어가고. 이제 뭘 할까? 그래 연애. 썸타는 여교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그녀하고 사귀어. 역시 인간사는 연애가 최고다. 최고의 마약이고 너한테 꼭 필요한 치료제이기도 하고."
"치료?"
"그래 치료. 넌 니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너한테 피해를 주잖아. 바로 너한테."
"나한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
"그게 가장 큰 문제지. 넌 너를 너무 괴롭혀.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지겹고 한심하고.. 또."
".."
"불쌍해. 넌 너한테 사과해야 해. 너처럼 다 가진 놈이 왜 이렇게 살아. 임마."
"다 가지지 못했나 보지. 아니면 가진게 전부가 아니거나. 난 늘 부족해. 뭔가 빠진 것 같아."
"얼빠진놈. 됐다. 술이나 한잔 더 하고 네 연애 사업 얘기나 하자. 기분 우울해진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내가 훨씬 쪼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