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삶은 어떨까? 지옥이 고통을 위한 곳이라면 천국은 행복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
천국의 관리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아있을 때 좋은 일 많이 했으니 이제부터 편하게 쉬면서 즐기세요.”
천국 입주자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제부터 뭘 하면 되죠?”
“많이 묻는 질문이죠. 쑥스러워하지 말아요. 하고 싶은 건 뭐든 하세요. 천국까지 온 영혼이니 나쁜 짓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죠? 나쁜 짓만 안 하면 나머지는 상관없으니까 마음껏 즐기세요.”
“네, 그러니까 뭘 하라는 겁니까?”
관리자는 조금 짜증나려 하지만 참는다. 여기는 천국이니까, 화내거나 찡그리면 안 된다.
“뭐 좋아해요?”
“영화보고 여행하는 거 좋아합니다.”
“그럼 됐네요. 천국 주변을 곳곳이 살펴보면서 여행을 즐기고 영화나 드라마는 무제한으로 공급되니까 마음껏 보세요. 그리고 자세한 건 저기 천국 이용설명서가 있으니까 천천히 살펴보면서 하고 싶은 것을 골라보세요. 시간은 충분하니까.”
“음식은요?”
“천국 레스토랑에 가면 뷔페식으로 돼 있으니까 배터지게 먹어도 아무 말 안 해요. 살도 안 찌죠. 이제 됐죠?”
천국 관리자는 인내심이 바닥난 것이지, 아니면 원래부터 입주민에게 허용된 시간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인지 휙 사라졌다.
1년 후 천국 입주자와 정기면담 시간이 돌아왔다. 일종의 피드백 관리 차원이다. 천국 관리자가 묻는다.
“천국 생활은 즐거웠나요? 혹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알려줘요. 고객관리팀에 연락해서 개선하라고 할게요.”
“네, 영화도 실컷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여행도 충분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른 건 없나요?”
박장우는 윤지호가 하는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시후씨가 천국 관리자라면 뭐라고 답할래요?”
“흠. 내가 관리자라면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겠습니다.”
박장우는 대답을 회피했다. 지호는 포에버월드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에이. 그러지 말고, 시후씨는 살아있을 때 CEO였다면서요. 시후씨가 천국의 CEO라고 생각하고 고객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서비스를 해줄 수 있을지 말해봐요.”
진짜 어려운 문제다. 천국까지 온 착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기업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허울뿐인 고객만족 말고, 진심어린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먼저 천국 고객상담을 통해 뭘 원하는지 알아봐야죠.”
“그러니까요. 뭘 원할까요? 난 행복하고 싶은데 뭘 해야 행복할까요?”
“지호씨는 뭘 해야 행복할 거 같은데요?”
“나한테 묻는 거에요? 좋아요. 난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 소설을 읽고 감탄하고, 나에게 묻는 거에요. 이런 건 어떻게 쓰는 거에요? 다음 작품은 뭐에요? 그 주인공은 누굴 모델로 한 거에요? 어때요? 이뤄줄 수 있겠어요? 천국 관리자님?”
박장우는 당황했다. 작가로서의 유명세가 소원인데, 어떻게 해야 이뤄줄 수 있나?
“그건, 좀, 그러려면 일단 지호씨 팬들이 있어야 하는데 팬들도 천국 거주민이니까 강제로 팬이 되게 할 수는 없고. 그럼 어쩐다..”
윤지호는 웃었다.
“천국 거주민들을 강제할 수 없으니까 지옥에다 팬덤을 만들고, 무조건 내 소설을 읽게 하고 독후감 쓰게 하고, 댓글 남기게 하고. 큭큭. 난 지옥에서 팬 사인회하고 그럴까요?”
그러나 박장우는 웃을 수 없었다. 그는 언제 행복했을까? 뭘 했어야 더 행복했을까? 남들보다 더 많은 돈? 세계에서 제일 부자가 되는 것?
“행복이.. 주로 행복이란 게 남들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정치인도 그렇고 봉사활동도 그렇고.. 남들보다 우월해야 행복해서 그런 것인가요? 지호씨 웃지만 말고 얘기 좀 해봐요.”
“나도 몰라요. 이곳에서 마음껏 소설 쓸 수 있는 건 좋은데 읽을 사람이 없어요. 아, 시후씨 빼고. 아무리 잘 써도 유명작가가 될 수는 없는 거죠. 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맨날 영화보고 여행하고, 그런 건 몇 년이면 지루할 것 같고, 나 같으면 거기서도 글 쓸 거 같은데, 글 쓰면 뭐해요? 내 글은 천국에서도 인기 없을 텐데. 그럼 난 행복하지 않겠죠.”
박장우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지호를 보며 말했다.
“작가선생은 안 행복하다는 거군. 하긴, 그렇게 행복타령만 하면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겠소? 저 밖에 다른 거주민들을 봐요. 친구들 만나서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수다나 떨다가 밥때 되면 배고프지 않아도 시간 때우려고 밥 먹고, 낮잠 자고, 그러려고 여기 온 것인지 너무 한심하지만 어쨌거나 잘 살고 있잖아요? 다 저러고 사는 거죠.”
“내 말이 그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시후씨는 어떡할래요? 그보다 난 어떡해야 할까요?”
이러려고 시작한 대화가 아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대화. 답 없이 빙글빙글 돌고 마는 답도 없는 이야기.
“괜찮다면 지호씨 얘기를 들어봅시다. 지호씨는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 됐소?”
지호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진짜 이상해요. 몸이 피곤하지 않은데 오래 앉아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지개를 켜게 돼요. 습관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가.. 거기다가 기지개를 하고 나면 시원하기도 하고. 이런 산뜻한 기분이 익숙하지 않은 건가.”
지호는 조그만 정원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다음번에는 시후씨 집에 가보면 어떨까요?”
“나야 환영이오. 언제든.”
박장우가 흔쾌히 찬성했다. 지호는 먼 하늘을 본다. 또 노을이 완벽하게 지고 있다.
“어린왕자 같아요. 조그만 별에 사는 어린왕자는 저 노을을 계속 보기 위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 앉으면서 끝없이 노을을 봤다고 하잖아요. 왜 노을을 좋아할까요?”
박장우도 윤지호가 보는 노을을 본다. 서울에는 없을 풍경. 듬성듬성 떨어진 단독주택과 가로수, 야트막한 산, 평원, 그리고 흐르는 강 같은 푸른 하늘.
“아마 우리도 노을처럼 서서히 사라질 운명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만약 불멸한다면 노을보다는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더 좋아했을 것 같아요.”
노을의 주홍빛이 지호의 얼굴에 반사되며 잠시 밝아졌다가 점차 어두워진다. 지호는 한동안 노을을 바라보다 다시 말했다.
“난 오랫동안 아팠어요. 머릿속에서 안 아팠던 기억이 전부 사라질 만큼 오랫동안 아팠죠. 그러다 생각했어요.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하루라도 진짜 인생을 살자고. 그래서 병원을 탈출했죠. 할 수만 있다면 걷다가 죽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걷는 거에요. 힘을 빼고, 목적지 없이 천천히, 그렇게 계속 걸어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툭, 죽는 거죠.”
“그래서 성공했소?”
“아뇨. 걷다가 쓰러졌는데 친구가 왔어요. 그리고 절 이곳에 데려왔죠.”
“의식전송을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요?”
“동의는 했어요.”
“와 보니, 어때요? 생각했던 것보다 못해요?”
“그런 건 아닌데, 또 이렇게 되는구나,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전부 맘대로 안 되는데 왜 사는 걸까요?”
노을은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