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가 원하지 않아도 박지나는 아무 때나 불쑥불쑥 나타났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방법이 없고 자기 발로 따라오는 걸 막을 수도 없었다.
이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지현우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뿐이었다. 같이 밥 먹을 것이냐 커피를 마실 것이냐, 현우는 커피를 골랐다.
“시비 거는 건 아니고, 혹시 아직도 죽은 여친을 사랑하는 거에요?”
이제 모르겠다. 며칠 전까지는 확신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현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너무 직접적으로 물었나? 왜 말을 못해요?”
지호의 얼굴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의식전송을 할 때만 해도 잠시 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송이 끝나면 예전처럼 얼굴 보고 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호에게 연결 요청을 하면 빨라도 몇 시간은 지나야 콜백이 온다. 그것도 보안과 비용문제 때문에 화상연결은 못하고 있다. 대화는 꼭 필요한 것만 하고 서둘러 끊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참기만 했다. 이러려고 그녀를 포에버월드에 보낸 것이었나?
“내가 집착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그게 집착 아니면 뭔데요? 죽은 사람 스토킹?”
“죽었다구요?”
반사적으로 반문했지만 사실 죽은 건 맞다. 법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그녀의 육체에서 남아있는 부분은 ST칩 안에 생체 이식된 코어 뉴런뿐이다. 그나마도 전력이 끊기면 수 분 내에 소멸할 것이다.
‘나는 겨우 세포 몇 조각을 지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죽었다는 거냐는 지현우의 반문에 박지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했는데 현우씨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포에버월드 거주민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윤지호를 뺀 다른 거주민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지호는? 그가 윤지호의 의식이라 생각하는 것이 실은 그녀를 흉내 내고 있는 컴퓨터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가?
“살아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잖아요?”
“신체적으로는 죽었죠. 하지만 정신이 살아있으니까.”
“그 둘이 다른 것인가요? 어차피 정신이라는 게 몸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 그렇게 배운 것 같은데. 정신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몸 없이도 잘 있어야지, 그 ST칩이라는 게 왜 필요해요?”
하는 말마다 때리고 싶을 정도로 맞는 말이다. 게다가 지현우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학교에서는 물론, 모털 컴퍼니 본사에서 연수할 때도 지겹게 들었던 소리다.
“거주민의 의식은 인간의 영혼이 아닙니다. 엄밀하게 우리는 두뇌의 구조를 복사한 것에 불과합니다. 복사한 대상과 복사물과 관계를 두고 ‘동일하다’고 믿는 건 개인의 자유일지 몰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영혼이 복사될까요? 영혼이 복사된다면 그걸 ‘영혼’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그렇다. 이성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감정적으로 끌리는데 이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박지나씨.”
지현우가 코너에 몰려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다. 공을 떠넘기고 니 맘대로 아무데나 차버리라는 것이다.
“내 말은 상관하지 말라는 거에요. 보고 싶은데 볼 수 없고, 만지지도 못하고, 연락도 되지 않으면, 이승에 없는 거잖아요? 실제로도 죽었구요.”
눈에서 떠나면 마음에서도 떠난다는 말이 이런 것이었나? 보지 못하고 얘기할 수 없으면 없는 것이니 더는 사랑하지 말아라?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짝사랑이 왜 있나? 날 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나?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렇죠.”
“적어도 이제 집착이라는 건 인정하는 거네요. 그러니까 집착하지 말고 현우씨도 관심 끊어요. 윤지호씨가 연락 안 되는데, 박민혁이 혼자 뭘 할 수 있겠어요? 이대로 두기만 하면 오빠도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겠죠.”
“그러다 지호의 계약을 끝내고 ST칩을 뽑아 버리면요?”
계약기간이 끝나고 연장할지 말지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보호자의 권리다.
“잘 가다가 또 이러네. 그럼 그 가상공간 속에서 영원히 살 거에요? 진짜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럼 지나씨는 어차피 죽는데, 10년 있다 죽나, 내년에 죽나 똑같다는 겁니까? 정말 자기 자신한테도 그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만약에 지나씨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 포에버월드로 의식전송 안 할 건가요?”
박지나도 말문이 막혔다. 그 생각은 안 해봤다. 아직 죽는다는 생각을 못하니 의식전송도 고려대상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건.. 생각해봐야겠네요.”